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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수능 시험이 축제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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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12 23:34:15 수정 : 2022-12-12 23: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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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철마다 수능 만점자 신문 장식
높은 교육열 대입 도구 불과 씁쓸
청년 세대의 활동 무대는 지구촌
시대변화 맞춘 고등교육 모델 절실

매년 12월 본격적인 입시철에 접어들면 언론은 수학능력시험 만점자를 기사로 내는 전통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학생 2명, 재수생 1명이 그 영광을 차지했다. 사교육보다는 자기주도 학습에 전념했고 최상위권 대학의 의예과를 지원했다는 합격자의 인터뷰는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 매년 비슷하다.

만점자 개인에게 분명 영광스러운 결과이다. 하지만 국위를 선양한 것도,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도 아닌데 국가 단위의 시험에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원하는 대학의 합격이 사실상 보장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현상은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이 결국 대학 입시를 위한 도구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높은 교육열 자체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한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려면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며,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도 있어야 하는 데다, 타고난 지능 이외에도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역량은 공부를 넘어 더 나은 인생에 이바지할 수 있기에 공부를 강조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부의 성과가 수학능력시험을 통해 평가받고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큰 부분이 결정되는 과정이 개인과 사회를 위해 필요한지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수학능력시험의 결과는 고등학교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물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학 입시 측면에서 볼 때 수학능력시험은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여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시험이라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설명하고 있다. 전국에서 동시에 같은 문제로 진행되는 시험이기에 채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다.

하지만 수학능력시험이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에 가장 적합한지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시행되는 교육의 본질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능력시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이 대학 교육에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문명사적 전환기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대학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창의적 통섭 역량, 난제에 도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역량, 공동체 실현에 기여하는 시민 역량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학생들이 수만 개의 문제를 푸는 교육열이 이러한 고등교육의 시대적 변화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십분 양보하여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수학능력시험이 필요하다면 이 시험을 일종의 최저 기준을 맞추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넘어서는 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은 좋은 대학의 수를 늘리고 진학 후 받게 되는 대학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수능에서 한두 개 덜 틀리기 위해 사교육으로 과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 입학 때보다 졸업 때 훨씬 성장할 수 있는 대학에 입학한다면 청소년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대학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결단의 문제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도 이미 나와 있다. 바로 대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2022년 고등교육 예산은 11조9000억원으로 초중고 예산의 6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이 가운데 40%인 4조6000억원은 국가 장학금이다. 설령 국가 장학금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나가더라도 세계 수준의 대학에 재학 중인 동 세대가 받는 교육은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10년 이상 등록금은 동결되었지만, 전체 일반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교육 역량 강화 예산은 고작 5117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한 학교에 지원하는 정부 출연금이 2022년 5379억원임을 고려해 볼 때 대학 교육에 정부와 국회가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

서울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인정하더라도 서울대 바로 다음 수준의 대학을 만드는 것은 합리적 수준의 재정 지원만 있다면 결코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령 발전 역량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구현할 수 있는 대학 20개에 1년에 500억원씩, 즉 매년 1조원이라도 10년 이상 꾸준히 지원하면 그 대학들은 단언컨대 현재 학생들이 선호하는 유명 대학,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 수준에 분명히 도달할 수 있다. 이제 청년 세대가 활동하고 경쟁하는 무대는 좁은 대한민국을 넘어 지구촌이며 동시에 현실 너머 가상세계이다. 대학 서열화와 지역 공동화(空洞化)라는 해묵은 관점을 넘어 고등교육의 발전을 통해 국가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 머릿속에 애국가만큼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대학 서열은 글로벌 관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에게 희망과 일자리를 주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이 하는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답이다. 청년 세대가 성장하고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의 터전으로 대학을 발전시키자. 그리고 수능을 더 큰 배움의 장으로 나서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자. 청소년을 수학능력시험의 굴레, 입시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책임은 온전히 기성세대에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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