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사실 알고도 구호조치 안 해
남북관계 우려 국가기관 월북 몰아”
월북과 배치 첩보 삭제 지시 혐의
박지원·서욱·노은채 불구속 기소
서해 피격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공무원 이대준씨의 실족 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당시 국가기관이 명확한 근거 없이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몰아갔다고 보고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29일 재판에 넘겼다.
서해 피격 사건의 ‘월북몰이’ 의혹과 은폐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2020년 9월22일 서해상에서 실종돼 북한군에 피격·소각된 이대준씨의 월북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이씨가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이탈할 때 구명조끼나 개인 방수복을 입지 않은 점 △유속(2.52∼3.52㎞)이 성인 남성의 평균 수영 속도(시속 2㎞)보다 빨랐던 점 △수온이 22도 수준으로 낮아 장시간 수영이 어려웠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수사를 통해서 규명할 실체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씨)이 실족했는지, 극단 선택을 했는지 등을 따지는 게 아니라 당시 국가기관이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로 발표한 것을 비롯해 국가안보실 등 국가기관의 조치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따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당시 정부가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는 비난이나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안보실을 비롯한 기관에서 이씨의 발견 사실을 인지하고도 구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안유지라는 미명하에 진상을 은폐할 필요가 있어 자진월북으로 몰아갔다는 게 수사팀의 시각”이라고 했다.
검찰은 사건 당시 관련 첩보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 박지원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원장과 노 전 실장은 이씨 피격 이튿날인 2020년 9월23일 국정원 직원들에게 피격·소각 등과 관련한 첩보 및 보고서를 삭제하게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는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당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긴급관계장관회의 이후 박 전 원장이 노 전 실장에게 직접 ‘통신첩보 일체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날 오전 9시 국정원에서는 박 전 원장이 불참한 채 노 전 실장, 김선희 3차장 등이 참석한 정무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삭제 지시가 전달됐고 이후 첩보 보고서 50여건이 삭제됐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박 전 원장은 이날 “기소에 대한 부당함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반박했다.
서욱 전 장관에 대해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혐의를 적용해 함께 재판에 넘겼다. 서 전 장관 역시 관계장관회의 직후 국방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정부의 월북 판단과 배치되는 내용을 삭제하거나 합참 보고서에 허위 내용을 쓰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국방부와 관련 부대에서 삭제된 첩보 및 보고서가 56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관계장관회의에서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 등에게 첩보 삭제를 지시한 당사자로 지목된 서훈 전 실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지난 9일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당시 공소장에서 제외된 첩보 삭제 지시 의혹을 비롯한 여죄 등에 대해 보강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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