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난방비 부담이 서민층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야당이 난방비 지원 방식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난방비 지원을 포함해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추경이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추가로 자극할 가능성이 큰 데다 건전재정 기조와도 맞지 않아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경감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현금을 직접 주는 방식을 거론한 것이라기보다는 요금 할인 확대 등 추가 지원 방안을 찾아보라는 지시에 가깝다고 보고 관련 대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난방비 추가 지원 대책에 추경을 편성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난방비 지원과 관련해 “취약계층에 대해 지원할 것은 지원해야 한다”면서도 “전체적인 재정 어려움은 고려하지 않고 국민의 부담만 줄인다면 국가가 운영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편성됐던 재난지원금과 같은 지원 방식에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반면, 야당은 난방비 부담을 강조하며 대규모 추경이 필요하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핑계로 난방비 폭탄 사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면서 “에너지 지원을 포함한 30조원 민생 추경 협의에 나서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난방비 지원 대책에서 추경 편성안을 배제하고 있는 건 대규모 재정 투입이 가져올 역효과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를 기록, 석 달 만에 상승폭이 확대된 가운데 공공요금 인상도 향후 줄줄이 대기 중이라 5%대 고물가가 장기화할 것이란 잿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에 대규모로 돈이 풀릴 경우, 물가가 더욱 들썩일 수 있고 이는 서민층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대규모 추경 편성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점도 문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2년 2차 추경 기준 국가채무는 1068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2017년 국가채무가 660조20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 정부에서 국가채무 증가세는 전례 없이 가팔랐다. 이에 정부는 올해부터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는데, 추경은 이런 정책 방향과도 배치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상황을 고려했을 때 추경은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정부가 분할 납부 등 여러 대책을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난방비 때문에 추경을 하는 선례를 만들면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난방비가 겨울에 많이 나오고 여름에 거의 안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1000억∼2000억원 수준의 이자 부담을 지는 대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난방비 분할 납부를 시행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