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재 중·고교선 신발·패딩 등
명품 입고 신는 아이들 드물지 않아
알바해서 수준 맞추는 학생까지도
대학가선 명품백 흔하게 볼 수 있어
3년 만에 20대 명품 구매 70% 증가
MZ세대 이미 시장선 주요 고객으로
업체들 키즈·영유아까지 시장 확장세
“우리 예솔이의 퍼스트 구찌예요. 할머니 선물 마음에 들어요? 갓난쟁이가 뭘 안다고 한 달도 못 입는 걸 명품으로. 그죠?”
넷플릭스의 화제작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의 시어머니가 갓 태어난 손녀에게 명품 배냇저고리를 입히며 얘기하는 장면이 최근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맞다. 배냇저고리는 길어 봐야 한 달 입힌다.
스토리 전개를 위한 장면이지만 한국인의 자식 사랑만큼이나 유난한 명품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명품업체는 실제 영유아를 위한 제품을 출시했고, 키즈 라인을 통해 아동복을 판매하는 등 저연령층으로 고객을 확장 중이다.
명품업체의 이런 라인 확대가 특정 국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이 중요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가격을 높여도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니, 황금알이나 다름없다.
업체의 바람대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명품 주요 구매층으로 합류했고, 청소년과 어린이까지 시나브로 명품 소비가 확산 중이다.
◆시나브로 명품에 익숙해지는 10대들
5일 롯데멤버스가 2018년 대비 2021년 연령대별 명품 구매량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대가 70.1%로 가장 높았고 이어 50대 62.8%, 30대 54.8% 순이었다.
20대뿐일까. 관련 통계는 없지만, 이미 10대 이하의 명품에 대한 관심이나 소비는 상당하다.
서울 강남구 중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동네의 고등학교 교사인 박정민(가명)씨는 “아이들 신발이 죄다 구찌, 루이비통, 발렌시아가고 그 밖에 새로 뜨는 브랜드도 많다”고 말했다. 부자가 너무 많아 명품을 자랑하진 않지만, 간혹 티가 날까 봐 친구들 몰래 아르바이트를 해서 명품 신발이나 가방을 사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강남구 소재 중학교 교사인 고아라(가명)씨는 “학생들이 명품 스니커를 많이 신고, 비싼 패딩을 산 친구들이 자랑하기도 한다”며 “복장 규칙을 어겨 압수했다가 돌려주겠다고 하면 ‘비싼 거라 안 된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 밝혔다.
학원가가 밀집한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학생들이 명품을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엄마들의 경우 가방과 지갑은 명품이 기본이란 게 이곳 학원 관계자의 얘기다.
유치원생도 명품을 입는다. 아이가 대치동의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정유미(가명)씨는 “유치원 아이들 옷 대부분이 명품”이라면서 “내 아이도 일부 명품을 입히지만, 한 철밖에 못 입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남만 그런 건 아니다. 경기 의정부 학원에서 외고나 국제중학교 학생들을 주로 가르치는 손윤하(29)씨는 “아이들에게 명품을 선망하고 과시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졸업식에서 프라다 신발을 신고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올려놓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경기 지역 교사인 송경민(가명·32)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쓰는 브랜드 가격대가 높아진다”면서 “학생들이 눈에 보이는 명품으로 급을 나누고 국내 브랜드를 사용하는 아이를 무시하거나 급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지도할 때, 물질만능주의가 심해지고 있단 걸 느낀다”고 털어놨다.
◆명품 먹히는 한국 시장… 커지는 산업
이미 MZ세대는 명품 시장의 중요한 고객이다. 직장인 한지현(29)씨는 “결혼식장 갈 일이 많은데 명품백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면서 “그래야 남들 보기에 모자라 보이지 않겠지 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예전엔 가난을 이겨낸 얘기가 주목을 받았다면, 요즘은 연예인도 ‘금수저’라는 게 셀링 포인트가 되는 세상 아닌가”라고 했다.
MZ세대인 이주아(25)씨는 “우리 세대가 명품 브랜드에 입문하는 건 주로 고등학생 때 아닌가 싶다”면서 “고등학교 입학 때 아버지에게 명품 브랜드 립밤과 지갑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명품 가방 입문은 20대”라며 “대학 캠퍼스에서 명품백을 흔하게 봤다”고 말을 이었다.
회계법인 삼정KPMG가 지난해 발간한 ‘럭셔리 시장을 이끄는 뉴럭셔리 비즈니스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45.4%, 신세계백화점 50.5%, 현대백화점 48.7% 등 2021년 기준 백화점 명품 매출의 절반을 MZ세대가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MZ세대의 럭셔리 구매 열풍은 부분적으로 소비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친구의 SNS 사진에 보이는 명품 가방, 유튜버의 ‘플렉스’ 후기 등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생성되고 빠르게 공유되는 콘텐츠는 디지털 정보 사회의 소비 네트워크 효과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플렉스는 재력이나 귀중품 과시 등 소위 돈자랑을 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랩 음악이나 젊은 층에서 주로 쓰인다.
투자시장이 얼어붙고 금리가 오른 영향 등으로 올 1월 해외 명품 매출이 2020년 3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처음으로 꺾이긴 했지만, 명품 시장이 완연한 하락세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객 연령이 낮아지면서, 매장 판매를 고집했던 명품업체들은 국내 대형 유통업체와 손잡고 판매 채널을 온라인까지 확대하는 등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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