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은 입양의 요건으로 동의와 허가 등에 관해 규정하고 있을 뿐, 존속을 빼고는 혈족의 입양을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다(제877조). 따라서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해 부모·자녀 관계를 맺는 것이 입양 의미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볼 이유가 없고, 조부모에 의한 손자녀 입양이 전통이나 관습에 배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조부모 등 혈족의 입양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2021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조부모가 자녀의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친생부모가 생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부모가 손주를 자녀로 입양할 수 있다”는 첫 결정을 내렸습니다(2021. 12. 23. 선고 2018스5 미성년자 입양허가).
○ 사실관계
미성년의 친생모가 사건본인을 출산했습니다. 친생모는 사건본인이 태어나기 전 혼인신고를 했지만, 출생 후 곧 협의이혼을 하였습니다. 친생모는 사건본인이 생후 7개월이 될 무렵 부모의 집에 사건본인을 두고 갔고, 그때부터 조부모가 사건본인을 양육했습니다. 조부모는 사건본인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자 사건본인과 친생모 사이에서 교류가 없고, 사건본인도 조부모를 부모로 알고 성장한다면서 친생모의 동의를 얻어 입양허가를 청구했습니다.
○ 원심의 판단
원심은 사건본인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어 가족 내부 질서에 혼란이 초래된다는 점, 입양이 아닌 미성년 후견을 통한 해법이 있다는 점, 신분관계를 숨기기보다는 정확히 알리는 것이 사건본인에게 이롭다는 점, 입양을 통해 친생부모가 사건본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건본인의 복리를 위해 바람직하지도 아니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입양을 불허했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사건본인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다고 해서 조부모들이 사건본인을 입양하는 것을 불허할 이유는 될 수 없고, 이 사건 입양이 사건본인에게 도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구체적으로 심리하고 이를 비교·형량하여 입양이 사건본인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되는지, 반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하는데, 원심은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입양을 불허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가사사건에 대한 전속관할을 가진 울산가정법원에 이송합니다.
다만 대법원이 파기이송한 위 사건에 대해 최근 파기이송심 재판부는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한 결과 사건본인의 복리라는 공익적 · 후견적 관점에서 이 사건의 경우 입양이 아동의 복리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조부모의 입양 청구를 불허하였습니다(울산가정법원 2022브1 결정).
이경진 변호사의 Tip
입양허가 사건은 가사비송 사건으로 법원이 직권으로 사실을 탐지하고 필요한 증거조사를 하게 되며 가사조사 등의 절차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입양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건본인의 복리에 적합하다는 점에 관한 적극적인 주장과 증거를 제출해야 하고 절차에 맞는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경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jin.lee@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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