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 신태용의 노력에 안타까운 축구팬들
내년 선거 앞두고 반이스라엘 정서 활용돼
비동맹의 전설, 인도네시아의 팔레스타인 지지
인도네시아 헌법에 규정된 “식민지배 거부”
“고맙습니다. 신태용(#STY) 감독님. 앞으로 더 훌륭하게 지도자 경력을 쌓기를 바랍니다.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단련시키고, 도와준 것에 대해 축구팬으로서 지금도 충분히 기쁩니다. U-20 대표팀의 3년 프로젝트를 망쳐버린 인도네시아를 용서해 주세요. 감독님, 인도네시아 대해 원한의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도네시아가 정치, 종교적 논란 끝에 2023 국제축구연맹(FIFA)의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최국 자격을 상실하자 현지 축구팬들이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시태그(#STY) 형태로 남기고 있다.
“고생한 신태용 감독님, 미안해요”
인도네시아 일부 네티즌은 신태용 감독에게 보직 사임을 통해 또다른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자신을 축구팬이라고 밝힌 현지인은 인도네시아의 축구계 상황이 좋지 않은데, 굳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했다. U-20 월드컵 개최국 자격 박탈 이후 인도네시아 대표팀에 징계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내놓은 애정어린 조언으로 볼 수 있다. 또다른 축구팬은 “인도네시아 축구는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신태용 감독을 향해 “감독직 그냥 사퇴해버려요. 축구가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경력에 오점을 남기지 마세요”라고 했다.
네티즌의 조언엔 U-20 월드컵 개최국 지위 박탈을 야기한 정치권을 향한 불만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한 팬은 “3년 넘게 성인 및 어린 선수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축구의 미래를 위해 고생했던 신태용 감독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담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개최 자격 반납도 아닌 박탈로까지 이어진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향후 FIFA의 징계가 이어질 경우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국제대회 출전이 좌절되고, 이에 따라 당장은 대표팀의 외국인 감독이 필요없다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을 보듬는 신태용 감독의 모습을 현지매체들은 비교적 자세하게 전했다. 볼라닷컴 등 축구전문매체와 콤파스·템포·CNN인도네시아 등 현지언론은 30일 자카르타 술탄호텔에서 이뤄진 신태용 감독의 기자회견 소식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매체들은 FIFA의 개최권 박탈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신태용 감독이 젊은 선수들 걱정에 방에서 머물러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2023년 말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와 계약이 만료되는 신태용 감독의 시선은 2026년 성인 월드컵을 향해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말 계약만료 신태용 “(2026년) 월드컵 준비할 터”
언론의 생중계 기자회견에서 신태용 감독은 U-20 월드컵 개최권 박탈에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문을 연 뒤, “2017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예선전을 준비했던 내 자신이 (인도네시아에서) 3년 반을 선수들과 같이 생활한 게 생각나 기분이 착잡하고 힘들다. 선수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예정대로) 개최가 됐다면 젊은 선수들에게는 큰 성장을, 인도네시아 축구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축구팬들을 배려하는 발언도 내놓았다. 그는 “(팬들이) U-20를 인도네시아에서 볼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고 밝혔다.
선수들에 대해서는 심리적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3월 아시안컵 대회에 참가해) 우즈베키스탄에서 경기를 하면서 나와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갖게 됐다”며 “현재는 정상적인 훈련이 힘들고, 훈련시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도 이어졌다. 그는 U-20 월드컵 주최국 지위를 상실했지만, 출전 기회가 보장된다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는 FIFA의 배려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대회를 대신 개최할 가능성이 높은 아르헨티나는 본선 티켓을 획득하지 못한 나라여서, 이를 고려하면 애초 개최국 인도네시아에 부여된 출전권은 사라지게 된다. 그리되면 1979년 대회 이후 가능할 뻔했던 44년 만의 본선 출전도 힘들게 된다.
신태용 감독은 6월 아시안컵을 잘 준비하고, 성인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선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는 2026년) 월드컵부터는 아시아 국가에 본선진출권 8,5장이 할당되는데, 예선을 통과해 아세안 축구 발전에 획을 긋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감독 계약은 올해 말 만료된다. 신태용 감독은 계약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답변할 상황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FIFA에서 인도네시아의 주최국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이 알려졌을 때 신태용 감독은 혼자서 호텔 방에 머물러 있었다고 밝혔다. 개최권이 박탈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수들은 로비에 모여서 이야기 나눴는데, 신태용 감독은 당시 “방에서 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과 같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방에서 혼자서 생각을 정리중이었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언론 다수는 그의 이 발언을 전하며, 선수들에 대한 배려심과 안타까운 심정을 삭이는 모습을 전했다.
이스라엘 변수가 만든 나비표과…개최권 박탈
FIFA가 인도네시아의 개최국 자격을 박탈한다고 알린 때는 30일이었다. FIFA는 수일 내에 대회 기간을 바꾸지 않고 새로운 개최국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아르헨티나가 대안 개최국으로 유력한 상태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FIFA의 결정에 안타까움을 피력했지만, 결정을 바꿀 수는 없는 상황이다. 5월 20일 개막을 51일 남겨두고 나온 FIFA의 결정은 그만큼 긴급했으며, 인도네시아엔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내 언론에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개최권 박탈은 이스라엘 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는 논란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논란 과정을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인도네시아 U-20 개최 임박→개최지 발리 주지사 등 이스라엘 참가 반대 입장 표명→조추첨 연기→FIFA 개최권 박탈→성인 대표팀에 악영향 가능성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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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애초 2021년 열려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2년 연기됐다가, 5월 20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확정됐다. 축구에 진심 열광적인 인도네시아 팬들은 이를 반겼다. 그런데 개최지로 확정될 때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대회를 앞두고 포착됐다. 이스라엘의 본선 진출이었다.
이·팔 갈등에 ‘이스라엘 배제’
대회가 다가오자 팔레스타인에 적대적인 이스라엘 대표팀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강점한 나라인데, 이런 나라의 대표팀의 입국을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게 요지였다. 더구나 인도네시아 헌법 판짜실라는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도 반이스라엘 정서를 강화시켰다. 여론은 점차 들끓었다. 총대는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의 와얀 코스터 주지사가 멨다. 이스라엘의 입국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최지 주지사의 주장은 반향을 키웠다.
‘입국 불허’ 주장은 이후 강한 휘발성을 드러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중재보다는 세력 결집 용도로 ‘축구’와 ‘이스라엘’을 활용한 여파였다. 여당인 투쟁민주당(PDIP)의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간바르 프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의 ‘이스라엘 거부’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그는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은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개최와 비동맹운동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을 적극 챙겼다”며 “우리는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PDIP는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와 그 이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이어오고 있는 정당이다. 무엇보다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가 PDIP의 총재로 있다는 점이 무게감을 더했다.
인도네시아와 이스라엘의 서로에 대한 배제 역사는 깊다. 외교관계는 응당 수립돼 있지 않은 상태이며, 상대국 국민에 대해 비자 발급은 당연히 거부하고 있다. 1958년 월드컵 예선 당시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과 맞붙는 일정이 짜였지만, 경기 포기를 통해 예선 탈락을 감수했다. 1962년 아시안게임을 주최할 때는 이스라엘 선수단에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스라엘 축구연맹은 아시아 일부 국가의 반대에 직면하자, 1974년 자국 대표팀 소속을 유럽연맹에 가입하며 대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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