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외로움 성별 아닌 환경적 문제
가정에서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여성의 일만은 아니다. 육아휴직 등으로 주부의 삶을 경험한 남성들 역시 이 기간에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주부의 외로움이 성별의 문제가 아닌 환경의 산물이란 의미다.
40대 직장인 정모씨는 3년 전 아내와 ‘바통터치’로 육아휴직했던 기간을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아이가 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큰 기쁨인 동시에 매우 고된 일이었다. 정씨는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직장 일을 쉬니 생활에 여유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주양육자가 되고 살림을 도맡다 보니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목표했던 ‘운동’과 ‘독서’는 어느새 잊혀졌다. 아이가 잠들면 진이 빠져 그냥 누워서 유튜브 영상만 보고, 다음날이 되면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낸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들어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정씨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때는 내가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위축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했던 남성 김모(35)씨도 육아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외로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전에 진행하던 업무 문제로 몇 달 만에 회사 상사와 연락했는데 ‘휴직해서 좋겠다. 잘 쉬다 오라’고 얘기해 기분이 묘했다”며 “육아와 가사노동을 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떤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만큼 에너지를 쏟았는데 힘든 일이란 점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육아로 인한 우울증이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직장에선 소속감·성취감을 느끼지만 주부는 상대적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있어 우울·불안해지기 쉽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육아지원종합센터 관계자는 “남성 육아휴직이 늘면서 상담을 문의하는 남성도 느는 추세”라며 “육아로 인한 우울증은 여성의 호르몬 문제 등이 원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구조에서 기인하는 면이 많다고 본다. 남성도 주부 우울증에서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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