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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 수렴된 40년 추상 ‘한 점 하늘 김환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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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18 07:16:14 수정 : 2024-05-15 16: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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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 수렴된 40년의 추상 - ‘한 점 하늘 김환기 a dot a sky_kim whanki’ 전
리노베이션 마친 호암미술관 재개관 기념전, 5월18일부터 9월10일까지
한국 추상 개념과 형식 구축, 마침내 전면점화에 도달
유화, 드로잉, 조각, 스케치 등 120점 전시
청년시절 사진, 작가수첩, 편지 등 100여 건 자료도 처음 공개

‘친근한 자연과 전통을 그렸다, 예술의 시정(詩情)을 느끼게 한다, 사유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김환기의 그림이 우리 마음을 앗아가는 이유다. 전문가들이 꼽는 3대 강점이다.

 

전통부터 현대까지 두루 아우르는 그의 40년 작품 세계를,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친 호암미술관이 규모와 격조를 갖춰 온몸으로 품었다.   

 

‘달과 나무’ (1948, 73×61㎝). 1948년 신사실파 창립전에 출품한 이 작품을 통해 당시 김환기가 여전히 적극적으로 추상을 시도함을 알 수 있다. 머지 않아 그의 그림 속에서 달과 달항아리가 만날 것을 예고한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1년 반,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부와 외부, 과거와 현재, 사람과 건축을 유연하게 연결하고 편의와 개방감을 확보한 모습으로 거듭난 호암미술관이 재개관에 맞춰 수화 김환기(1913-1974) 전을 마련했다. ‘한 점 하늘 김환기 a dot a sky_kim whanki’라는 주제를 내걸고, 18일부터 9월 10일까지 관람객을 맞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유화와 드로잉, 신문지 작업, 스케치북, 찰흙으로 만든 조각까지 120점을 선보인다. 그가 쓰던 화구, 24살 청년시절의 사진, 작품에 대한 구상이나 고민을 기록한 작가 수첩, 지인에게 띄운 편지, 애장했던 도자기 등 100여 건의 자료도 처음 공개된다. 

 

‘점으로 수렴된 40년 추상 여정’을 끊김 없이 쭈욱 따라가며 관람하는 구성이어서 비교적 이해가 쉽다. 1, 2층 전관에서 그가 한국적 추상에 대한 개념과 형식을 구축한 후 치열한 조형실험을 거쳐 점화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와 연속성을 살펴본다. 시대별 대표작은 물론,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여러 초기작들과 미공개작들이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영원의 노래’ (1957, 162×130cm). 김환기는 파리 시절 우리 전통과 자연을 추상화하는 데 몰입했다. 십장생과 도자기, 달 등 자신의 대표적 도상들을 정렬해 넣었다. 한국 작가로서 정체성과 예술적 특질을 굳건히 지키려는 의지가 담긴 대표작이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 ‘추상’이라는 새 장을 연 선구자다. 일본 유학을 떠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구축주의 등 당시 전위미술인 추상사조를 익히고 1937년 귀국한 뒤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가 됐다.

 

1930년대 후반은 그가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다. 민족예술 계승을 주창한 김용준, 이태준, 최순우 등과 교류하며 전통미술에 대한 식견을 키우고, 자연과 전통의 현대적 표현을 목표로 추상에 매진했다.

 

김환기는 전쟁 직후의 열악한 사회문화 조건 속에서도 우리 미술의 발전과 국제적 성장을 꿈꾼 리더이기도 했다. 동시대 미술과의 조화로운 융화와 동참을 열망하면서 스스로 국제 미술계에 도전한 그는 전통에 근간한 자신의 예술을 굳건히 지키고 한편으로는 미술 조류의 변화를 흡수하면서 집요하게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그의 한결같은 예술 여정을 이끈 것은 우리 것에 대한 굳은 신념과 자신감, 절망을 극복하는 인내였다.

 

50세에 건너간 뉴욕에서 김환기는 무수한 이방인 무명작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을 찾기 위해 치열하고 꾸준하게 조형실험을 이어갔고, 만년에 이르러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동양적 사유와 관조를 담은 전면점화에 도달한다. 그의 점화에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온 그의 추상 여정이 함축되어 있고,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는 자연과 인간, 예술을 포함하는 보편적 세계에 대한 확장된 사유가 담겨 있다.

 

‘여인들과 항아리’ (1960, 281×568cm).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제작연대가 밝혀진 작품. 작가수첩에는 당시 김환기의 복잡미묘한 심경이 담겨있다. “나대로의 그림대로 밀고가자”는 짧은 소회를 적었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이번 회고전 제목 ‘한 점 하늘’은 이같은 김환기의 40년 예술 세계 특징을 표출하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달항아리를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고국과 친구를 그리워하던 그에게 하늘은 예술의 원천인 동시에 자연과 삶, 세상을 함축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관람은 2층에서 출발한다. 김환기의 예술이념과 추상형식이 성립된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업이다. 이 무렵 그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동일시하며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켜 갔다.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등의 모티프가 그림의 주제로 자리잡으며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북서풍 30–VIII–65’ (1965, 178x127cm). 김환기의 그림은 뉴욕 이주 이후 양식의 변화를 보인다. 달과 산 등 풍경 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들로 대체된다. 파란색이 차가운 대기의 느낌을 전한다. 비가시적인 대기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자연은 여전히 추상의 원천이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론도’(1938)를 시작으로, 김환기 특유의 한국 추상 서막이라 할 수 있는 ‘달과 나무’(1948), 도자기로 가득찬 성북동집 작업실 선반을 연상시키는 ‘항아리’(1956), 시간을 초월한 자연과 예술의 영원성을 표현한 ‘영원의 노래’(1957), 전통미술양식과 점화의 씨앗이 함께 공존하는 ‘여름달밤’(1961) 등과 만난다. 특히 그의 유일한 벽화대작 ‘여인들과 항아리’(1960)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발견된 작가 수첩에서 제작연도가 확인됐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 (1970, 232x172cm). 별을 노래한 시정이 점화에 녹아들어 김환기의 새로운 추상세계를 열어 준 작품. 그의 점화를 처음 세계에 널리 알렸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1층으로 내려오면, 그가 뉴욕 이주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 보인다. 그는 뉴욕 시기 초기까지 이어지던 풍경의 요소를 점과 선에 흡수해 추상성을 높이고 다채로운 점, 선, 면의 구성으로 작업을 시도한 끝에 마침내 점화에 확신을 얻는다. 1969년과 1970년 사이 전면점화의 시대에 돌입한다.

 

‘5–IV–71 #200’ (1971, 254x254cm). 1971년부터 김환기는 점화에 변화를 시도한다. 평면적 수평배열 대신 원과 곡선 구성으로 운동감을 부여했다. 두 개의 동심원이 별무리를 연상케 해 우주의 심연과 같은 장엄함을 전한다. 점화 두 개를 연결해 하나로 완성한 색다른 제작과정이 눈에 띈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달과 산 등 풍경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으로 대체되는 ‘북서풍 30–Ⅷ–65’(1965),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우주’라는 별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5–IV–71 #200’(1971), 동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하늘과 땅 24–Ⅸ–73 #320’(1973)등을 비교해 보면, 점화의 변화 과정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뜨기 한달 전, 죽음을 예감한듯 그린 검은 점화 ‘17–VI–74 #337’(1974)로 마무리된다.

 

‘하늘과 땅 24–Ⅸ–73 #320’ (1973, 263.4×206.2cm). 화면을 구분하는 대지의 능선을 따라 하늘의 축과 땅의 축이 서로 다른 점의 세계를 펼친다. 당시 김환기의 도가적 사유를 고려하면 인간과 자연, 삶 모두를 아우르는 보다 큰 세계를 의미한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17-VI-74 #337’ (1974, 86x121.5cm). 죽음을 예감한 듯, 검은 점화 시리즈는 고요하고 정적이다. 1974년 6월 16일 일기에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라고 쓴 김환기는 7월 6일 마지막 작품에 점을 찍고, 25일 세상을 떠났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삽화와 기고문이 꼼꼼히 정리된 스크랩북, 파리 개인전의 방명록, 문화예술인 160명이 이름을 올린 1974년 추도식 팸플릿 등 에도 눈길이 머문다.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한국 현대 미술의 역사이자 상징같은 존재로서 ‘고전’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바람대로 김환기의 예술은 오늘날에도 공명한다”며 “그러나 그를 수식하는 최근의 단편적 수사들은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다시 한번 총제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을 일깨운다”며 이번 회고전에 의미를 부여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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