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7%는 이자 감당 못해
수출액은 7개월 연속 내리막
나라 살림 54조원 적자 ‘비상’
카드론 잔액 34조1210억원·1%대 연체율, 상장사 한계기업 비중 17.5%, 무역수지 적자 295억달러, 관리재정수지 54조원 적자….
최근 대한민국 경제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다. 기업과 가계는 물론 정부까지 어느 곳 하나 위기가 아닌 곳이 없다. 수출이 무너지면서 기업이 흔들리고, 법인세 등 세수가 덜 걷히면서 나라 곳간도 비어 가고 있다. 가계는 은행·카드 빚을 돌려쓰다 ‘연체의 늪’에 빠지는 모양새다. 그 사이 서민 물가는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다.
정부는 당초 반도체 업황 부진에 따른 성장률 하방 압력이 작용하면서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상반기는 낮고 하반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로 나타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는 복합위기에 따른 ‘상저하저’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 지원을 위한 과감한 규제 개혁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치솟는 카드론 잔액… 대출 관리 절실
22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카드사들의 카드론 잔액은 34조1210억원으로, 지난해 말(33조6450억원)보다 4760억원 늘었다. 2019년 말 29조원대였던 카드론 잔액은 2020년 말 32조원으로 올라섰고, 2021년과 2022년 33조원대, 올해 1분기 34조원대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카드사들의 결제성 리볼빙 이월잔액도 증가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7개 카드사(신한·삼성·KB·롯데·우리·하나·현대)의 올해 4월 리볼빙 잔액은 7조1729억원으로 지난해 4월(6조2740억원)보다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리볼빙은 일시불로 물건을 산 뒤 카드 대금의 일부만 먼저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는 서비스다.
카드사 연체율도 상승세다. 올해 1분기 카드대금, 할부금, 리볼빙, 카드론, 신용대출 등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대부분 1%를 넘어섰다. 그뿐 아니라 시중은행의 연체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이후 3년간 늘어난 대출과 지난해 가파른 금리 상승의 여파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평균 0.304%로, 3월(0.272%)보다 0.032%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4월(0.186%)과 비교하면 0.118%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5대 은행의 지난달 신규 연체율은 평균 0.082%로, 전월보다 0.008%포인트, 1년 전보다 0.04%포인트 높아졌다. 신규 연체율은 해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을 전월 말 대출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새로운 부실 증감 추이를 보여준다.
5대 은행의 4월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0.250%로 올해 3월과 지난해 4월과 비교해 각각 0.008%포인트, 0.016%포인트씩 올랐다. A은행의 경우 4월 가계대출 연체율(0.32%)은 2018년 4월(0.32%)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카드사와 시중은행의 연체율 상승은 대출 건전성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다.
◆기업도 흔들… 한계기업 급증
기업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내 코스닥·코스피 상장사 5곳 중 1곳은 버는 돈으로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한계기업으로 나타났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코스닥(1550곳)과 코스피(797곳)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중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의 17.5%에 달했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기업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으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다.
한계기업 비율은 최근 6년간 8.2%포인트나 상승했다. 2016년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율은 9.3%로 같았다. 6년 뒤인 2022년 코스피의 한계기업 비율은 11.5%로 2.2%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으나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에는 11.2%포인트나 뛰었다. 코스닥 기업의 한계기업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코로나19와 고금리라는 외부 충격에 취약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경련은 밝혔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2020년부터 확산된 코로나19, 급격한 금리 인상, 최근의 경기 악화 등이 한계기업 증가 요인으로 분석된다”며 “안정적 금융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어려움은 수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월간 수출액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이 7개월 이상 감소한 사례는 2018년 12월∼2020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이달 들어서도 20일까지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무역수지 적자 폭은 295억달러까지 확대됐다. 반도체 업황 부진, 대중국 수출 약화 흐름이 길어지면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라 살림도 비상… “상저하고 사실상 어렵다”
나라 살림도 녹록지 않다. 정부는 지난 2월 38조2000억원, 3월 23조1000억원 상당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냈다. 1월 흑자(7조3000억원)를 고려해도 1분기 재정적자 규모가 54조원에 달한다.
무역수지·재정수지가 적자 행진을 이어 가고 있지만 정부는 ‘상저하고’ 흐름을 자신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무역수지 적자가 지난 4월에 그나마 가장 작은 폭이었는데 5월에는 지난해 기저효과 등으로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 “5월이 지나면 적자 폭이 개선되고 4분기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대외 실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수에 대해서도 “최근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경기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한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의 이 같은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상황이 안 좋아 경기를 끌어올리기가 어렵고, 물가도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리 인상 요인도 남아 있는 상태여서 상황이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도 “상저하고는 하반기 반도체가 다시 살아날 거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그 부분이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고 진단하며 “불필요한 기업 대상 규제를 완화하고, 건강한 기업에 선별적으로 대출금 만기 유예 등 금융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