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한 번 해볼 생각 없느냐.”
택배? 거제도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택배를 소개받았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다. 다양한 직업과 직장을 전전해 왔지만, 그렇다고 육체노동을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만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은 자명했다. 더구나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수억 원대의 빚까지 떠안은 그가 아니던가.
그래, 한 번 해볼까. 7년 전인 2016년 즈음, 소설가 정혁용은 거제도에서 택배를 시작했다. 당시 미혼으로 울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였다.
“고향 울산에서 오래 살아서 지겹기도 했고, 좋지 않은 일이나 애증도 많아서 좀 떠나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어머니와 살아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독립도 하고 싶었고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부터 일을 시작한 이래 새벽 2, 3시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밤을 세우고 일한 뒤 바로 출근한 적도 적지 않았다. 땡전 한 푼 없어서 회사에서 가불을 받아 기름을 넣고 겨우 끼니를 해결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1년을 버텼다.
“매일 매일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기분이었다⋯ 육체노동은 처음인데다 강도도 커서 매일 체력의 한계치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건 내 시간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항상 밖에 있는데 하늘을 볼 시간도 바람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쓰러져 자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것도 서너 시간 말이다.”(13~14쪽)
1년여 거제도에서 택배를 한 뒤 잠깐 쉬었다가 상경해 택배를 이어갔다. 상경한 지 3개월 만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했다. 중간에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잠시 그만두고 물류센터 일도 했지만, 결국 다시 택배로 돌아왔다. 어느 새 7년. 그는 낮에는 ‘문밖의 사람’ 택배기사로, 저녁에는 소설가로 두 개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소설가 정혁용이 소설가와 택배 기사라는 두 개의 삶을 살아온 일과 그 과정에서 느낀 소회, 성찰을 정리한 에세이 『문밖의 사람』(마이디어북스)을 펴냈다.
책에는 소설가인 그가 택배를 하게 된 계기, 택배 노동의 구체적인 실상과 애환, 생활인으로서의 고뇌, 일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 소설 쓰기에 대한 애정 등이 진솔한 필치에 담겼다.
극적인 성공 신화도 없고, 돈 잘 버는 이야기는 없다. 대신 낮에는 노동자로 택배를 하고 밤에는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하루하루 삿된 꿈과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하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가, 작은 깨달음이 있다.
“난 항상 의미의 뒤에 숨어 삶을 도피해왔다. 마주하고 노력하고 피를 흘릴 자신이 없어서. 의미를 찾으면 그런 고통 없이 살아질 거라고 생각했다⋯노력의 고통 없이 말이다. 결국 순수하게 의미를 찾은 게 아니라 삶을 날로 먹고 싶었을 뿐이었던 거다.”(235~236쪽)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택배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진상 고객들 이야기. 이들에 맞서서 화를 내다가 화조차 내지 않게 됐다는 사연에선 아연 숙연해질 수밖에. 그러니까 어느 아파트 배송을 하고 나올 때의 일이다. 엘리베이터가 하나인 경우 문 사이에 택배를 놓고 잡아서 배송할 수밖에 없는데, 1층으로 나올 때였다. 술이 취한 삼십대 초반의 한 남자가 문이 열리자마자 말했다. 야! 이 개새끼야. 평소라면 멱살이라도 잡고 화를 냈겠지만, 그날따라 대뜸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드렸습니다. 아니, 내가 이런 인간이 아닌데 미쳐가나 싶었다고.
“상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정이 들었다. 낡고 더러운 작업복, 분명 조선소에서 야간작업까지 했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애틋했던 거다. 당신이나 나나 참, 먹고 산다고 고생이 많다, 싶어서. 그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28~29쪽)
소설가 정혁용이 소설 쓰기와 택배 노동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삶과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을까. 정 작가를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7년 전 거제도에서의 택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일은 오전 7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6시 반에는 일어나 차를 타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에는 분류 작업을 한 뒤, 오전 11, 12시부터 배송을 시작했다. 거제도에선 물량이 작은 대신 지역이 넓어서 새벽 2, 3시까지 일해야 했다.(하루 16~17시간 일하는 셈인데) 보통 하루 280개를 배송했다. 시간당 타수가 20개 정도 나왔는데, 280개면 거의 14시간 정도 걸린다. 분류 작업까지 포함하면 18, 19시간 일하는 셈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언제 먹었느냐.
“다른 사람들은 보통 출발 전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작업 중간에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더라. 나의 경우 물량도 많고 시간도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하고 새벽 2, 3시 귀가해 고기를 삶아먹곤 했다. 아마 5년간 한 끼밖에 안 먹었던 것 같다.”
그는 책에도 이렇게 적었다. “택배는 내게 구속이었다. 독방에 갇힌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새벽에 나가 매일 밤 두세 시에 마치니 사람을 만날 시간도 없고 일요일 하루도 잔다고 바빴다. 무엇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 혼자서 그 모든 걸 끝낼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는 이도 말을 거는 친구도 없었다⋯ 노동과 적막과 고독뿐이었다. 벗어나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다. 지라발광이 따로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방법이 없었다.”(113~114쪽)
다행히 지금은 택배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 우선, 많은 시간이 소요된 분류 작업이 배송에서 제외되면서 노동시간이 줄었다. 그래서 이젠 아침에 여유가 생겨서 회사 근처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물량과 담당 구역 역시 줄었다. 배송도 화 및 수요일을 제외하곤 보통 오후 6시쯤 끝난다.
―지금은 어떤가.
“보통 낮 12시쯤 되면 분류 작업이 끝난다. 분류된 물건을 차에 옮겨 정리하는 탑차 작업은 2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오전 9시 전에 회사에 출근해 1차로 한 번 정리하고, 근처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다시 2차로 정리한다. 오후부터 배송을 한다. 물량과 구역도 줄어서 화 및 수요일은 오후 9시, 10시쯤 끝나고 목 금 토요일은 오후 6시나 7시쯤 끝난다.”
―택배 노동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나거나 보람찬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 아니라서 특별히 보람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소설에도 썼지만, 이 직업은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물건만 배송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없다. 그래도 거제도에 있을 때 다른 회사에서 택배하시는 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 분은 택배를 무척 좋아하셨다. 어느 날 뭐가 그리 좋아요? 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 내 택배 받아서 기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 가족을 건사할 수 있고, 운동도 되고, 내가 노동해 정직하게 살고 있으면 됐지, 라고. 직업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건데, 같은 인생도 이런 식으로 바라보며 편하게 살 수 있다니. 나의 경우 밖에 나가서 돈을 번다는 게 힘들다, 하지만 일이니까 월급 나오니까 한다 정도의 노동 관념을 갖고 있다. 물론 내 인생이 힘들다 내가 왜 택배기사를 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확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을 텐데.
“진짜 화가 나는 것은 많은 일을 당해서 확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다. 육체노동 시장으로 진입하면 커리어가 단절돼 사무직 시장으로 다시 진입하는 게 힘들다. 결국 육체노동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육체 노동판에 갈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생활이 어떻게 떨어질지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 어떤 모멸을 당하더라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비극이다.”
―앞으로도 택배를 계속할 것인가.
“책이 많이 팔려서 글쓰기로만 먹고 살 수 있으면 하지 않겠지만, 아직은 그런 형편이 되지 못한다. 생활도 하고 가정도 건사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계속 택배를 할 생각이다.”
―택배하면서 글을 어떻게 쓰는지.
“전업 작가를 하면 느긋하게 일어나고, 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좀 봤다가 나중에 쓰지, 하면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어영부영하는 등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택배를 하면 그럴 시간이 없다.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대신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쓰는 시간은 뺏길지 몰라도,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택배하는 동안 작가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작가적인 생각이나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배송을 하다가 팔순 할머니 한 분이 쓰레기통을 뒤지시는 모습을 봤다. 남긴 배달 음식을 챙기는 것 같았다. 본인이 드시는 건지 아니면 고양이에게 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저 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같은 행위나 모습이라도 선택한 인생과 선택하지 않은 인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들은 돈 안 되는 잡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택배를 하면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그냥 쓴다. 전에는 분류 작업을 하면서 10~20분 핸드폰에 서너 문장 정도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퇴근한 뒤 2시간 정도 쓸 수 있다. 아무래도 여유가 생기니까 조금 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에세이에서 독자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는 자신을 평가하는데 자주 남의 시선이나 사회가 보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지금 전국에서 몇 등 노동자, 대표, 전무, 국장⋯. 끊임없이 남과 비교해가며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힘들더라도 자신의 노동으로 밥을 먹고 산다면 품위를 가져야 된다. 남들이 나를 안 봐줘서 그렇지, 스스로 앞가림하고 사는 것 아닌가. 월급이야 적을 수 있지만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으면 그 생과 삶에 품위를 가져도 된다. 택배라는 업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면 되고, 소설 쓰기라는 업을 즐겁게 하면 되지, 대표이사나 전무, 유명 소설가 등의 계급에 얽매일 필요는 전혀 없다.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위로를 찾아야 한다. 에세이의 주제가 굳이 있다면 품위를 가져도 된다는 것 아닐까.”
소설가 정혁용은 소설쓰기와 택배 노동을 병행하면서 비로소 삶의 진정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삶이란 어떤 의미가 아닌 삶을 향한 열정 자체라는 것, 살아내는 것 자체라는 것을.
“원래 삶의 의미란 게 없다. 우리는 그저 삶에 던져졌을 뿐이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묻는 건 질문이 잘못된 거다.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채플린의 말이 맞는 것을 느낀다. 인생은 선택할 수 없다. 인간은 매일 매 순간 주어진 삶을 살아낼 수 있을 뿐이다. 오직 해석이 있을 뿐이다. 나태로 삶을 사느냐, 열정으로 사느냐. 다만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해석의 뒤에 자기만의 삶의 의미가 따라올 것이다.”(236쪽)
서점의 구석에 놓여 있던 책 한 권을 펴들었다. 첫 문장부터 확 빨려 들어갔다. 문장과 유머, 문체 모두 그 동안 읽었던 소설과는 달랐다. 뭐 이런 작가가 다 있지. 책 표지를 다시 보니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Thornton Chandler)의 책이었다.
대학원 시절 어느 날 오후, 그는 울산 시내 한 서점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 『안녕 내 사랑(Farewell, My Lovely)』을 사서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다니. 나도 이런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건설회사 직원, 건설업체 사장, 보험 설계사, 술집 주인, 막노동 등 여러 직업과 직장을 전전하는 사이,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보험 설계사로 일하던 어느 여름날. 회사에 나가기 싫었던 그는 어머니에게 출근한다고 말한 뒤 집을 나섰지만, 그가 간 곳은 회사가 아닌 피시방이었다. 문득 글을,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단편소설을 한편 써보자.
10시간 넘게 피시방에서 글을 쓴 끝에 그는 단편소설 한 편을 써낼 수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신문사 신춘문예는 너무 멀리 있었다. 그나마 응모가 가까운 것은 『계간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쓴 단편은 미스터리가 아니었다.
다음 날, 그는 다시 피시방으로 출근해 전날 쓴 소설을 미스터리로 바꿔 썼다. 『계간 미스터리』에 응모했고, 그해 겨울 당선 통보를 받았다. 등단 작가가 된 것이다. 소설가 정혁용의 원점이었다.
“정말 도피처가 없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하는 일마다 아무것도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했던 일이라도 하나 해보자 해서 글을 썼던 거예요.”
1972년 울산에서 나고 자란 정혁용은 2009년 겨울 단편소설 「죽는 자를 위한 기도」가 『계간 미스터리』 겨울호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이후 장편소설 『침입자들』, 『파괴자들』 등을 펴냈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침입자들』은 남미에서 번역 출간돼 화제가 되기도.
―작품 세계를 말해 달라.
“첫 장편 『침입자들』은 느와르가 가미된 일상 이야기이고, 『파괴자들』은 하드보일드 느와르 장르로 쓰겠다고 결심하고 쓴 작품이다. 추리작가협회 작가로 등단은 했지만, 추리 스타일을 차용하는 정도이다. 추리 작가로서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스릴러를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스릴러 작가로서 생각은 없다. 그때그때 쓰고 싶은 것을 쓸 뿐이다. 습작을 하거나 마감이 있는 원고를 쓰지 않는다. 단편의 경우 원고 청탁이 들어와 쓴 것들이고, 기본적으로 장편을 쓴다. 개인적으로 장편이 좋다. 단편 쓰기가 100m 달리기라면, 장편 쓰기는 마라톤이다. 주법이 다르다. 저에게 익숙한 주법은 호흡이 긴 마라톤 주법이다. 그렇다고 600페이지짜리 벽돌책은 또 맞지 않는 것 같다(웃음).”
―소설쓰기의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읽는 사람이 쉽게 읽어야 한다. 쉽게 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위해 꾸미지 않는다. 비루하고 남루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꾸미는 것은 대가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보면 장광설로 시작하는데, 대가는 그래도 된다. 하지만 대가가 아니면 솔직하게 써야 한다. 만약 내가 가난에 대해 써야 한다면, 그 집은 찬장까지 비어 있었다, 는 한 문장으로 끝낼 것이다. 대화를 많이 쓴다. 이 사람이 어떤 캐릭터일까, 하는 게 확 와닿게 되고 독자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기 위해서다. 독자가 상상할 부문까지 작가가 묘사하는 것은 낭비다. 독자가 상상할 여지를 줘야 한다. 설명이 많을수록 좋은 글이 아니다. 대단한 구상을 하고 쓰는 스타일은 아니고, 첫 문장이나 캐릭터가 나오면 그것을 붙잡고 써나간다.”
―차기작 계획이나 작가로서의 비전은 무엇인가.
“현재 쓰고 있는 소설은 대하소설 같은 하드보일드 느와르다. 세 번째 장편도 문장이 나왔기 때문에 써나가고 있다.”
―일상이나 글쓰기 루틴은 어떤지.
“잠깐 전업했을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저녁까지 8시간에서 10시간을 썼다. 체력이 떨어지면 매일 오전에라도 4, 5장을 썼다. 하지만 택배 일을 할 때는 아침에 쓸 수가 없어 저녁에 쓴다. 가장 좋은 것은 눈 뜨고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아침이 좋다. 저녁에는 아무래도 머리도 복잡하고 피곤하고 술도 마셔야 한다. 귀가해 씻고 바로 쓴다. 양을 많이 쓰지 못하고 에이포 한 장 정도 쓴다. 글을 몰아서 쓰는 사람은 아니다. 다른 작가들은 문장을 다듬고 플롯을 다듬지만, 저는 일단 기계처럼 매일 몇 장이라도 꾸준히 쓴다. 반면 잘 써지더라도 일정량 이상은 또 안쓴다. 왜냐하면 다음 날 쓸 게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실마리를 남겨두고 실타래 뽑듯이 딱 그 정도만 쓰면 술 먹고 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데, 많이 쓰면 머리가 달떠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혼자 보면서 소주 두 병 정도 마신다.(건강은 괜찮나)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술을 많이 먹고 있지만, 정상으로 나오더라. 택배가 중노동인 건 맞지만, 요령 있게 하면 운동도 되는 것 같다. 다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력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요즘에는 몸이 조금 무겁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서 울기도 하는데, 나이가 먹어서 공감의 폭이 넓어지고 감정의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
그 힘든 택배 일을 하면서 소설을 쓰다니. 지인들은 택배를 하면서 소설을 쓰는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워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나는 그저 퇴근해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간 것일 뿐이야.”
어김없이 택배를 마친 그날 밤, 정혁용은 또다시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나선다. 태평양의 심연에 놓여 있던 키보드를 건지고, 안데스산맥의 어디쯤에 놓여 있던 책상을 가져와 앉은 뒤에. 탁, 탁, 탁탁. 자판을 두드린다. 세 번째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이 시작되고, 삶도 지속된다.
“먼 후일, 생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마흐무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파티마나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얼굴이 아닌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막 봄이 찾아온 들판에서 할아버지가 양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작으나마 온기가 섞여 있었고⋯.”(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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