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합의체·대법관 제청 등 혼선
‘재판지연’ 정략이면 역풍 맞을 것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결국 부결됐다. 1988년 7월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헌정 사상 두 번째다. 재석 295표 가운데 가결 118표, 부결 175표, 기권 2표였다. 168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임명동의 등 인사안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도록 한 국회법의 취지는 각자가 헌법기관인 의원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열흘 넘게 권한대행 체제다.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는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이 재산 문제로 사퇴한 후 30년 만이다. 당시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되기 전이라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가 2주 만에 해소됐지만 이번엔 다르다. 장기간의 대법원장 공백과 사법 파행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통령이 임명 절차를 다시 진행하더라도 후보자 지명과 인사청문회 등이 필요해 최소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대법원장이 공석이면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심리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가 없다. 대법관 임명제청과 법관 인사도 차질을 빚는다. 당장 내년 1월1일 퇴임하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 후임자 지정부터가 문제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 등 도덕성 시비가 제기된 것은 유감스럽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밝혀야 했을 만큼 10억원 상당의 비상장주식을 비롯한 재산신고 누락, 자녀 상속세 탈루 가능성, 성인지 감수성 부족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해 논란을 키웠다. 이 후보자는 부랴부랴 그제 “비상장주식을 처분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대통령실의 부실 검증 탓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대 대법원장 후보자들의 도덕성 시비를 고려하면 절대 불가 사유로 보기 어렵다.
지금 민주당의 태세로 볼 때 사법부의 또 다른 축인 헌법재판소 소장 인사도 우려스럽다. 유남석 소장이 다음 달 10일 임기가 종료되는데, 민주당은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헌재소장을 뽑는 일에도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럴 경우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이 동시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잇따라 강수를 두는 민주당의 정치 셈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가 2027년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면 이미 기소됐거나 앞으로 벌어질 재판에서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정치권에는 이 대표의 재판들에 대비한 꼼수가 동의안 부결과 연결돼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재판 지연과 함께 친야 성향의 법관이 다수 포진한 사법부의 현재 지형을 유지하기 위해 인사를 늦추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사법부 수장 인사마저 볼모로 이용한다면 거센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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