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제기 5년여 만에 주민 승소
지진 ‘정신적 피해’ 국내 첫 배상
전 시민 참여하면 위자료 1.5조
2017년 11월15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국가가 포항시민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소송을 시작한 지 5년여 만이며 지진에 따른 정신적 피해 배상 판결은 국내 처음이다. 이 지진은 지열발전소 건설에 따른 단층활성화가 원인인 이른바 ‘촉발지진’이다.
법원이 포항지진 집단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처음 인정함에 따라 대규모 손배소가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민사1부(부장판사 박현숙)는 16일 모성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공동대표 등 지진 피해 포항시민들이 국가와 포스코 등을 상대로 낸 지진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줘야 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2017년 11월15일 발생한 규모 5.4 포항지진과 2018년 2월11일 일어난 규모 4.6 여진을 모두 겪은 포항시민에게는 300만원, 두 지진 중 한 번만 겪은 시민에게는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열발전사업과 지진 인과관계를 다퉜는데 지열에 따른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다”며 “다만 국가가 피해 복구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점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번 민사소송은 ‘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포항지진 특별법)에 따라 지급되는 포항지진 재산피해에 대한 구제 지원금과 별도로 진행됐다.
포항지진 직후 결성된 범대본은 2018년 10월 1·2차 소송인단 1227명을 꾸려 대한민국과 포스코 등을 상대로 ‘1인당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범대본에 따르면 소송에 참여한 전체 인원은 약 5만명이다. 정부 등이 소송에 참여한 포항시민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1500억원 내외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송을 낸 지 5년여 만에 포항시민 손을 들어준 판결이 나옴에 따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도 인지대만 내면 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50만여명에 이르는 전체 포항시민이 소송에 참여할 경우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총 1조5000억원 규모로 늘어난다.
이번 판결로 지진 발생 당시 포항에 거주한 포항시민은 누구나 소송에 동참함으로써 지진트라우마 등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정신적 측면은 물론 물적 측면의 피해액에 대해서도 보상의 길이 열리게 됐다.
모성은 범대본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지진피해에 대한 구제금을 적절하게 지원한다고 밝혔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피해 청구액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만 시민들에게 전달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우 역시 간단한 소송절차를 통해 미흡했던 물적 피해액에 대한 보상도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만, 특별법에 의거 포항지진 피해에 대한 소송 시효가 5년으로 제한됨에 따라 내년 3월20일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인해 인적·물적 피해액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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