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 공립고등학교가 교내 불법촬영 피해자일 가능성이 큰 여교사 2명을 가해학생 집에 보내 사건 진술서를 받아오게 하는 등 대응 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교사노동조합은 22일 성명을 내고 “성범죄 대응의 첫 조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라며 “학교 교장과 교감은 본인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는 여교사를 2차 피해위험에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0월 18일 해당 학교 교사가 체육관 여자화장실 갑티슈 안에서 촬영 기능이 켜진 불법촬영용 휴대전화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학교 재학생인 피의자 A군은 사건이 커지자 이튿날인 19일 자수했다.
노조에 따르면 A군은 학교 측에 약 10회에 걸쳐 교내 여자화장실에 불법촬영기기를 설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초기단계였던 지난달 26일 해당 학교 교감은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는 담임교사 등 여교사 2명을 진술서 작성을 명목으로 A군 집에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해당 교사들은 노조에 “가정방문 직전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한 명이라도 빠져나와서 경찰에 신고하자고 다짐하기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노조는 “교직 3년차 교사는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3개월 진단을 받고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또 학교와 교육청 차원의 보호조치 역시 전무하다. 이 교사는 공무상 병가 요청도 하지 못하고 일반병가를 신청해 사비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6일 첫 제보 이후 교육청과 학교 측에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 피해교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바 있지만 현재까지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 사건으로 교사들은 성폭력 사건에서조차 교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큰 분노를 느낀다. 재발방지 조치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화장실에서 불법촬영기기를 최초 발견한 B교사 역시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병가를 내고 치료와 상담을 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교육청은 A군 범행이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상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B교사에 대한 공무상 병가를 인정하고 관련 상담과 법률자문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A군은 이달 열린 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퇴학 처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A군이 범행에 사용한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마친 경찰은 피해자 조사를 진행한 뒤 사건을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다만 범행 횟수와 피해자 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A군이 체육관 여자화장실 외에도 본관 화장실 등에도 불법촬영기기를 설치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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