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여자프로배구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의 2023~2024 V리그 4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4일 화성종합체육관. 경기 전 만난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흥국생명이랑 붙으면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팀들에겐 최소 1승은 거뒀는데, 흥국은 아직 이기지 못했다. 새해 첫 경기에서 흥국생명을 잡고 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 말대로 IBK기업은행은 이날 경기 전까지 흥국생명을 상대로 올 시즌 3전 전패를 당했다. 양 날개 포지션 선수들의 신장이 작은 편인 IBK기업은행은 흥국생명의 주무기인 김연경-옐레나 ‘쌍포’를 막기 쉽지 않다. 상성이 좋지 못하다는 얘기다. 김 감독은 “(김)연경이가 컨디션이 좋으면 블로킹 위에서 때린다. 결국 김연경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을 어떻게 봉쇄할지가 오늘 승부의 키포인트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IBK기업은행은 3세트까지 김연경을 잘 봉쇄해냈다. 김연경은 3세트까지 단 6점, 공격 성공률은 19.23%에 그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문제는 김연경을 3세트까지 잘 막아내고도 IBK기업은행은 1,3세트를 내줘 세트스코어 1-2로 밀렸다는 점이다. 흥국생명은 에이스인 김연경이 부진했지만, 최근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옐레나가 팀 공격을 이끌었다. 세터 이원정도 김연경의 공격 루트가 뚫리지 않자 김수지와 이주아로 이어지는 미들 블로커들을 평소보단 적극 활용했다.
4세트 들어 김연경은 귀신같이 부활했다. 4세트에만 공격 성공률 63.64%를 기록하며 7점을 올렸다. 그럼에도 IBK기업은행은 4세트에 각각 8점과 6점을 올리며 활약한 아베크롬비, 표승주의 ‘쌍포’를 앞세워 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듀스로 끌고갔다.
4세트에 부활한 김연경은 5세트를 지배했다. 71.43%의 공격 성공률로 5점을 따냈다. 득점의 순도는 더욱 높았다. 5점 중 3점이 경기 막판 나온 점수였다. 14-15로 뒤진 상황에서 시간차로 다시 승부를 듀스로 끌고간 뒤 이후엔 수비로 걷어올려진 하이볼을 기가 막힌 크로스 코스의 앵글샷으로 처리한 뒤 포효했다. 왜 자신이 ‘배구여제’라 불리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결국 IBK기업은행은 흥국생명에 세트 스코어 2-3(18-25 25-12 22-25 25-20 15-17)로 패하며 흥국생명전 상대 전적이 4전 4패로 더 벌어졌다. 승점 1을 추가하는 데 그친 IBK기업은행은 승점 32(11승10패)로, 3위 GS칼텍스(승점 37, 13승7패)와의 격차는 좁히지 못했고, 5위 정관장(승점 27, 8승12패)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IBK기업은행으로선 아베크롬비(35점), 표승주(21점), 황민경(15점)까지 ‘삼각편대’가 고르게 터졌기에 이날 패배가 더욱 아쉬울 법 했다. 팀 공격 성공률도 41.88%로 흥국생명(39.02%)에 비해 다 높았고, 범실도 19-21로 더 적었다.
경기 뒤 김호철 감독은 “이로써 흥국생명전 네 번째 패배인가. 이게 우리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은 잘 했다. 다만 이길 기회가 왔을 때 이렇게 매번 놓치는 것은 운도 아니고, 힘이 모자른 것”이라면서 “코트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안타깝다. 이런 경기를 잡아내면 앞으로 더 큰 힘이 될 것 같은데”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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