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조직보다 리더 이미지 중요시
프랑스는 2017년 서른아홉 살의 대통령을 뽑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프랑스는 2024년 서른네 살의 총리를 내세워 젊은 정치로 또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한다. 7년 전 39세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46세다. 프랑스 대통령과 신임 가브리엘 아탈 총리 나이를 합해도 80세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81세)보다 적다.
프랑스 정치에서 마크롱의 중도세력 르네상스와 어깨를 겨누는 극우 민족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당 대표는 약관 28세다. 2년 전 스물여섯에 당권을 장악했으니 대학을 갓 졸업할 나이인 20대 중반에 전국적 정당의 대표로 등장한 셈이다. 이쯤 되면 프랑스 정계가 젊음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표현할 만하다. 왜 그럴까.
우선 프랑스 정치에서 젊은 정치 리더의 등장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1980년대에 이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36세의 로랑 파비우스를 총리로 임명한 바 있다. 18세기 혁명 시절 프랑스의 전설적 영웅 나폴레옹은 20대에 장교로 승승장구하다가 서른에 최고 통치자인 통령(統領)의 지위에 올랐고 몇 년 뒤 황제로 즉위했다.
왕이라면 어린 나이에 왕권을 계승할 수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장교로 시작해 혁명 조국을 수호하는 능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혁명 정부의 수뇌로 신속하게 부상했다. 부모를 잘 만나 왕이 되는 경로와는 기본으로 다르다. 나폴레옹은 자신만의 능력과 수완으로 조국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다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통을 세웠다.
정치를 넘어 프랑스는 모든 분야에서 새로움을 갈망하는 문화다. 예외가 있으나 새로움은 대부분 젊음과 통한다. 1962년 이브 생로랑은 약관 스물여섯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적 패션 하우스로 키웠다. 물론 정치건 패션이건 이런 ‘젊은 별’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은 어린 보석을 발견해 후원해 주는 거장(巨匠)들이다.
과거 미테랑 대통령은 파비우스 총리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바르델라 당 대표를 선임한 사람은 어머니뻘의 마린 르펜이다. 마크롱은 아탈의 형이나 삼촌뻘이라 사람들은 아탈을 미니 마크롱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이브 생로랑은 10대에 이미 패션계 거장 크리스티앙 디올이 눈여겨보고 자신을 이을 후계자로 선발했던 인재다.
자기 자식이나 손주에게 권력, 부, 명예를 물려주기보다 재능 넘치는 젊은이를 골라 자신의 경험을 전수(傳授)하며 키우는 사회 관습이 높이 평가받는다는 뜻이다. 가톨릭 문화의 대부·대모 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또 능력은 있으나 배경이 부족한 젊은이에게 사회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와도 통한다.
모든 역사와 전통을 고려해도 최근 프랑스 정치의 변화는 그 이상이다. 전통적 민주정치에서 리더는 지방에서 중앙으로 다양한 선출직이나 공직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성장해 왔다. 하지만 21세기 민주정치는 젊음의 에너지와 강한 의지를 상징하는 리더가 국민의 지지를 신속하게 직접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경험과 조직보다 리더의 이미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2017년 선거 경험이 전혀 없었던 마크롱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일약 부상과 대통령 당선은 새로운 정치시대의 개막이었던 셈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