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 전투선 속전속결로 포위·섬멸
北 전술도 모방… 훈련부대 전투력 극대
무박 3일 실전훈련 거쳐 대항군 양성
독도법·산악기동·응급처치 체득 전문화
드론으로 정찰 등 미래戰 구현도 박차
“1시 방향에 적 출현”
지난달 24일 강원도 인제의 눈이 쌓인 험준한 능선에 어두운 실루엣들이 아른거렸다. 전문대항군연대의 공방 훈련이 시작된 순간이다. 공격을 맡은 황군은 산악지형을 통해 시가지에 침투했고 청군은 방어를 맡았다. 기지 동쪽이 소란스러워지자 건물에 대기 중이던 청군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산발적인 총격전이 이어지던 순간 황군 2개 소대가 방어병력이 적은 서쪽 통문을 통과해 기지 안으로 침투했다.
이 같은 성동격서 움직임으로 황군은 방어군이 자리 잡은 3층 건물에 진입해 무서운 기세로 2층까지 점거했다. 건물 내 병력이 몰살되기 일보 직전인 순간 청군의 김선욱 일병이 홀로 아군을 구하러 건물 1층으로 진입했다. “최진규 상병님 저 아래에 있습니다. 2층에 적 3명 남았습니다”라고 말한 그는 적의 후미를 공격했고 황군은 위·아래로 포위돼 전멸했다. 시가지 전투는 물론 기습 작전, 병력 열세를 극복하는 노하우 모두 체득한 이들이다. 김 일병의 빠른 판단 덕분에 청군으로부터 건물을 지켜냈다. 그는 “시가지 전투에서는 속전속결이 가장 중요하다”며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인다”고 답했다.
◆지하갱도 침투, 자폭드론도 활용
전문대항군은 2003년에 창설된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 소속 부대다. 과학화전투훈련(KCTC)은 전투 장비 및 식량 등 실전을 치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약 일주일간 여단급 부대가 공격, 방어작전을 펼치는 훈련이다. 실탄 대신 레이저를 발사해 교전이 가능한 마일즈(MILES·다중통합 레이저 교전체계) 장비를 전투 조끼와 방탄헬멧, 전차, 드론 등에 부착하여 실탄 사격 없이 실전과 똑같은 효과가 난다. 마일즈 장비를 착용하게 되면 소총뿐만 아니라 자주포, 전차 사격으로 인한 피해도 측정할 수 있고 서 있는 위치나 자세에 따라 치명률도 자동으로 측정돼 실제 전투 상황과 유사하게 훈련할 수 있다.
과학화전투훈련단의 규모도 점점 커졌다. 2002년부터 중대급 전투훈련을 진행한 과학화전투훈련단은 2015년 연대급 부대인 전문대항군연대를 창설했고 2018년부터 여단(연대)급 전투훈련을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과학화전투훈련장을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14개국뿐이고 여단급 전투훈련을 진행하는 나라는 한국, 미국, 이스라엘 3개국뿐이다.
여기서 전문대항군은 우리 군이 북한군과 맞닥뜨릴 상황을 철저히 시뮬레이션하고 그 역할을 해준다. 우리 군은 북한보다 강한 가상 북한군과 훈련을 하며 전투력을 기르고 전술을 완성한다. 이를 위해 전문대항군들은 군복도 북한군의 신형 군복과 유사한 군복을 착용하며 북한군의 일부 장비를 모형화해 전투훈련 간 운용하며 최근 북한군의 전술도 연구하고 반영하고 있다.
과거 야전부대들은 쌍방훈련을 할 때 자체대항군을 두고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훈련을 했지만 적 교리와 전술로 전문화된 전문대항군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전문대항군은 부대의 상징인 ‘산악 전갈’처럼 신속하고 은밀하며 치명적인 공격으로 유명하다. 또한 대항군연대 내에는 보병뿐만 아니라 포병·전차·공병 중대와 수색소대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실제 전투 상황에 필요한 행동 및 작전 등을 숙달하고 있고 이날 훈련장에서도 장병들은 최근 지하갱도를 본떠 만든 지하터널에 침투하고 점령하는 훈련 등을 시행하고 있었다.
전문대항군연대는 미래전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최근 전쟁의 핵심병기로 떠오른 드론, 그중에서도 자폭드론을 운용하며 새로운 전장의 모습을 구현해가고 있다. KCTC 훈련에서도 드론을 통해 적진을 정찰하고, 자폭드론에도 마일즈 장비를 부착해 적을 타격하는 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교육도 실전과 똑같이…산악전투 최적화
전문대항군이 되기 위해서는 간부도 병사도 모두 ‘전갈교육대’에서 6일간의 교육을 받으며 교전기술, 전투대형, 독도법, 통신장비 사용법, 전투부상자처치 등을 익혀야 한다. 이 기간 교육생들은 무박 3일간 공격·방어 훈련을 실시하며 실전과 똑같은 상황을 경험해보기도 한다.
지난달 24일 교육훈련에서는 교육생 소대 간의 고지 점령 및 방어 훈련을 펼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생들은 북한군의 특성을 그대로 모방해 적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산악지형에 특화된 북한군이 총을 한 손으로 잡고 내달리는 방식인 ‘한 손 파지법’을 사용하기도 했고 통신장비가 열악한 적군처럼 전장 상황을 육성 릴레이로 전파해 적의 위치와 소대장의 지시 사항을 모든 소대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같은 교육이 끝나고 나면 가슴에 부대의 상징인 ‘전갈 마크’를 부착할 수 있게 된다.
교육생으로 참가한 이창민 중위는 “전투기술들을 집중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간부 입장에서도 약진하는 법이나 인원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등의 전투기술 완벽히 숙달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전갈교육대장 이상진 상사는 “전문대항군은 훈련부대의 카운터파트로 훈련에 참여한 야전부대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전투교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전투기술과 전투지휘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며 “(교육 기간 중) 개인 전투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산악기동 능력과 소부대 전투기술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군 교리 주기적으로 교육…이·하마스戰도 전투훈련 반영”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이스라엘-하마스전 사례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과학화훈련단 전문대항군연대장을 맡은 이상훈(사진) 대령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군의 전술과 교리를 주기적으로 교육할 뿐만 아니라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나는 드론 운용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난 시가지 전투 및 갱도 진지 전투 양상을 대항군의 전투훈련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대령은 “전갈부대가 지향하는 목표는 한국군 야전부대의 전투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실력 있고 적보다 더 강한 ‘카운터파트’로서 우리 군의 교육훈련 혁신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육군 야전부대와 연 10회 이상의 KCTC 훈련을 하고 있으며 한·미 연합 KCTC 훈련, 아미타이거 전투실험, 정부기관 대테러 훈련도 대항군 역할로 참가하고 있다. 주한미군과도 1년에 3차례씩 맞붙으며 지난해 10월에는 5개국 8팀이 참가한 국제과학화전투훈련경연(K-ICTC)에 참가해 한·미 연합군의 카운터파트로 맞붙기도 했다.
전갈부대는 최신장비로 무장한 미군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대령은 “지난해 12월 미군 1개 대대와 맞붙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 미군은 스트라이커 장갑차, 휴대용 드론 등 최신장비를 동원했다. 전문대항군은 장비나 무기에서는 열세가 있었지만 지형과 기상을 이용한 기만작전을 펼쳐서 미군 대대를 완벽하게 섬멸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형을 속속 파악해 아군이 유리한 곳으로 상대를 유인했고 상대가 익숙하지 않은 기상 조건에도 충분히 대비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군의 우수한 첨단장비의 위력을 몸소 느꼈지만 전술적인 요소로 충분히 그 위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미군 측이 우리와 훈련하는 횟수를 늘리길 원한다”고도 했다.
이 대령은 전문대항군만의 특별한 전술이 있냐는 물음에 ‘탁월한 전투 의지’라고 답했다. 그는 “연대장부터 첫 전투훈련에 임하는 이등병까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실제 전투에서 우리의 전우인 훈련부대가 피를 덜 흘린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결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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