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검찰이 항소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어제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1심 판단 내용이 검찰 주장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심 판단 결과가 저희(검찰)가 주장한 게 다 배척이 되어서 그 경위를 확인해 보고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도 했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검찰 조직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회장이 받는 혐의는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합병이 이 회장 승계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수사가 미진해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가 난 점을 감안하면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것은 2020년 9월이다. 1심 재판에만 3년5개월이 걸렸다. ‘사법 리스크’가 이어지는 동안 이 회장의 글로벌 경영 행보는 위축되고 삼성전자의 투자도 제약을 받았다. 항소심에 대법원 재판까지 가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예상조차 힘들다. 그러는 사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과 존재감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앞서 검찰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항소장을 냈다. 그러면서 “법원과 견해차가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공소장에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로 적시된 47개 혐의 전부가 무죄 판단을 받은 점에 비춰 보면 검찰의 논리는 군색하다. 양 전 대법원장도 2019년 2월 기소 후 거의 5년간 1심 재판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 피고인이 1심에서 일부 무죄가 아니고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으면 항소가 불가능하다. 같은 사건으로 반복해 재판을 받는 것도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기간 형사재판을 받으며 법원을 들락거린 경험이 없는 이들조차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의 항소 후 법조계에선 “검찰의 항소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자존심 세우기가 피고인의 인권보다 우선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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