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파업이 유보됐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발하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그제 밤부터 어제 오전 1시까지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집단행동 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돌입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박단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가 사퇴한 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다고 공지했다. 우려되던 전공의들의 파업은 당장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평행선을 달리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일단 파국은 피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전협이 파업을 유보한 것은 강행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총회에서도 정부 입장이 강경하고 국민 사이에 의대 증원 찬성 여론이 커 집단행동으론 얻을 게 없다는 회의론이 작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등 정부의 강경 방침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은 후 단체 행동에 나서자는 의견도 제시됐다고 한다. 당초 전공의 88.2%가 단체 행동 참여 의사를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논의 결과다. 그렇지만 대한의사협회가 15일 궐기대회를 계획 중이고 17일 서울에선 전국의사대표자회의가 예정돼 있다. 의사들의 파업이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국면이다.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는 명분과 논리가 없다. 지금 우리 현실은 선진국에 비해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응급실과 소아과 등을 중심으로 필수·지역 의료 차질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의사가 5000명 정도 부족하고 2035년엔 그 수가 1만5000명으로 늘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5년간 매년 2000명씩 총 1만명을 늘리는 것이 파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의사 양성에 최소 10년가량 걸리는 걸 감안하면 초기 대폭 증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민 89%가 의사 증원에 찬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는 의대 증원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어제 “3월까지 의대 증원분의 학교별 배분을 마쳐 총선 전에 확정 짓겠다”고 했다. 의사 증원 등 의료 개혁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또 다른 한 축이 있는 만큼 양자가 머리를 맞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힐 때 속도는 배가될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공의들의 파업 유보가 의대 증원 갈등을 대화로 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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