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경대응 방침에 파업 결의 ‘멈칫’
집단휴진 등 찬반 대립하다 결론 못 내
“반발 심상치 않지만 실제 액션은 고민”
의협 “회원 대동단결… 투쟁 동참을” 호소
국민 83% “파업해도 의대 증원에 찬성”
의료계 일각 “환자 피해 원하는 바 아냐”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이후 휴진 등 투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던 전공의들이 집단행동 결정을 미룬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즉각적인 행동에 들어가기보다는 다른 의사 단체의 상황을 지켜보는 등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대형병원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할 경우 ‘의료 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상황을 예의주시해왔던 정부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전날 열린 온라인 대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안건을 가결했다고 13일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또 박단 대전협 회장이 자신의 SNS에 입장문을 내고 “의대정원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향후 집단행동 여부 및 결과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애초 대전협은 이날 회의에서 집단행동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이전부터 결집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대전협이 지난달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시 파업 등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응답 비율은 88.2%에 달했다. 또 정부 발표 직후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은 이미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집단행동을 가결하는 등 투쟁을 위한 채비에 속도를 내왔다.
전날 대전협 회의에서는 집단 휴진 등 파업 여부를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전협이 쉽사리 파업을 결의하지 못하는 데에는 의사 파업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의 파업 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할 경우 의사면허 취소까지도 검토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의사 단체들에는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전국 수련병원에는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도 내린 상태다.
복지부는 법무부, 국방부, 전국 17개 지자체 등과 함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려 매일 대책 회의를 열고 있고, 대통령실까지 나서 의사 파업에 대한 엄정 대응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한 상황이어서, 정부 발표를 뒤집기 힘들다는 현실론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들의 반발)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만, 정부가 강경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실제 액션으로 이어가는 것은 또 다른 얘기기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세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4.6%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고, 이 중 83.2%는 ‘의사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증원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4월 총선 일정도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지금부터 총선까지 파업하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며 “환자 피해는 의사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총선 직전에 힘을 모으는 게 (협상하기에) 더 낫다”고 말했다. 다만 대전협이 비대위를 구성한 만큼 추후 집단 휴진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전공의들이 개별적으로 수련병원과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방법으로 병원을 떠나는 방법도 거론된다. 오는 15일까지 이어지는 전공의 실기시험 이후 또는 이달 말로 예정된 수련교육 종료가 전공의 집단행동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날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회의를 열어 동맹휴학 등 집단행동 여부를 논의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료계 전면 투쟁을 내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공의들의 행동 방침이 불분명해지면서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만약 전공의들의 파업이 무산된다면 의협이 투쟁 동력을 잃을 수 있어서다. 2020년 문재인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 대전협은 의사 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집단휴진에 들어갔고 참여율도 80%에 달했다. 전공의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의료 공백’을 야기했고,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무산시킨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개원의 중심인 의협의 경우 당시 휴진 참여율이 10%를 넘지 않는 저조한 수준이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사가 장기간에 걸쳐 이룩한 위대한 의료시스템을 정부가 한순간에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절대 좌시할 수 없다”며 “회원 모두가 대동단결해 강철 같은 단일대오로 비대위의 투쟁에 끝까지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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