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등 ‘집단행동 압력’ 입증 땐 실형 여지
의료계는 “사직서 자율 제출” 강조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법적 처벌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대화와 설득이 실패할 경우 복귀를 거부하는 개별 전공의도 원칙적으로 정식 기소를 통해 재판에 회부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검찰은 정부 정책에 반발해 집단휴진 등의 단체행동을 주도한 대한의사협회(의협) 지도부 등을 업무방해∙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의 경우 당시 의사들이 자율적으로 단체행동에 참여했는지 여부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갈렸다. 수사당국은 이번에도 집단행동 주동자와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을 의료법 위반·업무방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직서 제출해도 업무개시명령 유효
정부는 의료법에 따라 21일 기준 전공의 총 6228명에게 현장으로 복귀하라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전공의들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병원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1년 이내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개별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료 기관은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에 따라 이들의 사직서를 모두 수리하지 않았다.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경우 업무개시명령은 유효하다.
정현진 법무법인 안팍 변호사는 “의료기관이 전공의의 사직 의사를 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의료행위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는 존재한다”며 “의료기관이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위반하고 사직서를 수리하면 기관이 행정처분을 받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단적으로 진료 거부…‘업무방해죄’ 적용 가능
당국은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급작스럽게 진료를 거부해 병원의 운영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면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 지시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대법원은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해 주장을 관철하고자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중단하는 실력행사는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에 해당한다”며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볼 것은 아니고,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려면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위력’에 해당하는 ‘집단행동’이었다는 게 인정돼야 한다.
◆공정거래법 위반, 2000년∙2014년 유∙무죄 갈려
사용자 단체격인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이 부당하게 사업자(개별 의사)의 행위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사업자단체 금지행위) 혐의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려면 의협 등이 집단행동을 강제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실제 전공의들이 집단휴업을 했던 2000년과 2014년에도 자율적 참여 여부에 따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제도에 반발해 집단폐업·휴업을 주도한 김재정 전 의협 회장은 업무방해∙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받았다. 당시 법원은 의협 측이 수회에 걸쳐 의사들에게 휴업에 동참하라는 내용의 공문과 투쟁지침을 보냈고, 휴업에 불참하는 의사들을 감시하는 등 의사들에게 집단휴업 동참을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2014년 원격의료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주도한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확정 받았다. 법원은 “노 전 회장 등이 휴업을 이끌긴 했지만 구체적 실행은 의사 자율 판단에 맡겼다”며 “이를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봐 무죄를 선고했다.
당국은 내부적으로 집단 사직서 제출 등에 대한 지침이 오가거나, 업무에 복귀하려는 전공의를 저지하는 등의 강요가 있었는지를 조사할 전망이다.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단체와 전공의들은 사직서 제출이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입장이다.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전날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내부 과정에서 아무런 강요가 없었고 강요나 압박이 있으면 제보하라고 했다”며 “개별 사직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단 휴진 이유로 수술 지연…“손해배상 청구도 가능”
의료 파업으로 환자가 의료사고 등의 피해를 입을 경우 의료 기관이나 전공의 개인을 대상으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지원 법무법인 나란 변호사는 “기존에 예정돼 있던 수술이나 진료 일정을 집단 휴진을 이유로 환자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변경하거나, 지연할 경우 의료법상 진료거부 금지 조항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의사들의 집단휴진과 진료거부 또는 지연이 환자의 진료수급권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로 인정될 경우 환자들은 해당 의료기관 및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전공의 개인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정민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는 “의료 행위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를 증명하기 어려운데, 특정한 사람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실무상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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