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증원 30여년간 실패·좌절
국민 보건 위해 정책적 결단 필요”
“지방 병원·의료원은 텅텅 비어
환자·의사 재배분 해결 급선무
의료전달체계 개편 우선돼야”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증원 규모 발표 후 첫 공개토론을 벌였지만 각자의 주장만 고집한 채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의대 증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양측 주장부터 크게 엇갈렸다.
20일 밤부터 21일 새벽까지 진행된 MBC ‘100분 토론’에서는 먼저 ‘의사가 부족한지’를 두고 의대 증원 찬성과 반대 측이 팽팽히 맞섰다.
유정민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전략팀장은 “의사는 현재도 부족하고 또 앞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며 “이미 지역·필수 의료 공백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지금 계속 발생하고 있고,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급증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보다 의사 수가 많은 나라들은 의사를 더 늘려왔지만 우리는 27년간 의대 정원을 늘리는 조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전날 의료계 집단행동과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역대) 정부는 지금까지 의사 증원을 여러 차례 시도해 왔으나, 지난 30여년 동안 실패와 좌절을 거듭해 왔다”며 “오히려 2006년부터는 의대 정원이 줄어서 누적 합계 7000여명의 의사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대측은 2000∼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의사 수 변화 추이 그래프를 들어 보였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이 자료를 근거로 “우리나라는 의사 수 증가는 지난 10년간 30%로 OECD에서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며 “출생아가 급격하게 감소했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동결하더라도) 이 증가폭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필수·지방 의료진 부족은 의사 정원이 적어서가 아니라 인력 배분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피부 미용쪽에는 의사가 많지만, 필수의료·중환자실·응급실에는 적다. (수도권) 대학병원에는 줄을 서지만 지방의 병원·의료원은 텅텅 비어 있다”며 “환자의 재배분의 문제, 의사의 재배분의 문제가 급선무이지 의대 정원의 문제가 급선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 팀장은 “배분의 문제와 의사 수 부족의 문제가 공존하고 있다”면서도 “의사 수 부족의 문제가 배분의 문제를 좀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받아쳤다. 지역이나 필수의료 배분을 위해서는 의사 수가 더 늘어나야 된다는 의미다.
찬성측 인사로 나선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이 회장의 통계를 반박하고 나섰다. 의사 증가율은 분모가 작으면 증가율 변동이 크기 때문에 절대 수치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2011년에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0명이었는데 2021년에 2.6명으로 0.6이 늘었지만, 그 사이 OECD 평균은 3.2에서 3.7로 0.5가 늘었다”며 “의대 정원을 현재의 2배로 늘리지 않는 한 OECD 국가와 우리나라의 의사 수 격차는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의료의 질’을 반대의 근거로 들었다. 그는 “의사 수가 지금 부족한 것인지, 미래에 부족할 것인지를 지금 단정짓기는 어렵다”며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국민건강지표도 거의 최상위권인데, 의사의 절대수가 그렇게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라면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찬반 간 또 하나의 큰 쟁점은 증원 규모다. 윤 대통령은 전날 “2000명 증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허황된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이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강조한 바 있다.
토론에서 유 팀장은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 연구를 언급하며 “일단 최소 5000명 정도는 부족하다고 봤고, 2035년이 됐을 때 지금 (의료를) 유지하려면 1만명이 부족한 것으로 봤다”면서 “과거 정원 감축이 없었다면 2035년 1만명이 넘는 의사가 더 배출됐을 것이다. 더는 늦추지 말아야 되며, 국민 보건을 위해 이런 정책적 결단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반대측에서는 정부가 거론한 연구가 2000명을 한꺼번에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에서 진행된 해당 연구에서도 마지막에 ‘의사 인력의 증원보다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우선되어야 된다’고 돼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KDI의 연구 역시 연간 5%씩 늘려 총 정원을 4500명 정도까지 유지하는 게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돼 있다. 한 번에 2000명을 늘리는 방안이 아닌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필수의료 정책 논의 없이 증원이 이뤄지면 2000명의 이공계 인재가 의료계로 가고, 결국 의대 쏠림으로 인한 국가적 피해도 커질 수 있다”며 “선후관계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분야 정책도 함께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유 팀장은 “저희는 의사 숫자만 늘리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절대 없다”며 “빅5 병원 정도의 역량을 갖춘 거점병원을 만들고, 거기에 좋은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정책, 지역·필수의료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내용을 담은 정책을 함께 추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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