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나가!”
2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국제축구연맹(FIFA)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태국의 C조 3차전에선 이런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응원단 ‘붉은악마’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퇴를 위해 내지른 뜨거운 외침이었다.
황선홍 임시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이날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태국과의 홈 경기에서 1-1로 아쉬운 무승부를 거뒀다. 손흥민이 전반 42분 기분 좋은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황선홍호는 이를 지키지 못하고 후반 16분 태국에 일격을 허용했다.
붉은악마를 포함해 경기장을 가득 채운 6만 관중은 선수단엔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아시안컵 탈락,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손흥민(토트넘)의 충돌 논란, 어린 선수들과 스태프의 판돈을 건 카드놀이, 직원의 유니폼 뒷돈 거래 의혹 등 숱한 논란에 싸늘한 시선이 향한 곳은 대한축구협회뿐이었다. 팬들은 이날 벤치에서 출격하는 이강인이 소개될 때도 야유가 아닌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비판의 대상은 정 회장을 비롯한 협회 지도부였다. 경기 시작 전 붉은악마는 “정몽규 나가”를 외쳤다. 관중석에는 ‘협회는 (정)몽규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몽규 아웃(OUT)’, ‘(정)몽규가 있는 축협에는 미래가 없다’고 적힌 수십 개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정 회장을 비롯해 이석재 부회장과 황보관 기술본부장을 비판하는 걸개와 축구협회가 선수들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고 지적하는 플래카드도 곳곳에 보였다.
붉은 악마들은 경기 중간에도 “정몽규 나가”라고 수차례 외쳤고, 경기가 1-1 허무한 무승부로 끝난 뒤에도 선수를 향한 비난 대신 정 회장 퇴진을 외치는 구호가 연신 그라운드를 울렸다. 이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정 회장도 팬들의 분노를 직접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팬들이 이렇게 나선 건 지난달 아시안컵 탈락 이후 한국 축구의 날개를 잃은 추락 탓이다. 요르단과의 준결승전에서 졸전 끝에 탈락한 한국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했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을 비롯한 협회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수년간 감독직을 떠나 있던 ‘백수’ 클린스만 전 감독이 정 회장과의 만남 몇 번 만에 사령탑을 맡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또 이강인과 손흥민이 아시안컵 당시 충돌했던 사실도 곧바로 인정하며 축구협회는 선수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여러 논란이 이어질 때마다 정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피하기 급급했다. 이에 팬들은 축구회관 앞에서도 시위를 벌이며 협회 지도부를 규탄한 바 있다.
이날 만원 관중의 사퇴 목소리를 들은 정 회장은 스카이 박스(VIP석)에서만 경기를 관람했다. 종료 직후엔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