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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고 실수 잦아 ‘게으르다’는 비판에 사회 생활 힘들어지는 이유… 알고 보면 우울증?

입력 : 2024-03-25 06:00:00 수정 : 2024-03-24 19: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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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 교수

“수면장애·폭식·무기력·부주의함…
‘게으르다’ 오해받아 사회적 위축
12년 새 2배… 60%가 자살 고민

링컨·처칠 등 위인들도 투병 경험
동료 임세원 교수 피살 사고 이후
나 역시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행복 1위 북유럽도 과거 사회문제
스웨덴 7명 중 1명 정신질환 치료
韓, 치료 접근성 높여 자살 막아야”

“우울증은 ‘선진국병’이라고 불립니다. 기본적으로 행복은 기대 분의 성취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고도 산업사회에서 ‘기대’라는 분모가 늘어나지만, 저성장 사회라는 특성으로 내가 이룰 수 있는 분자 즉 ‘성취’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국내 역시 이런 이유로 우울증이 증가할 수밖에 없죠. 우울증 해결을 가족 내 대화, 회사 ‘회식’ 등에만 미루지 않고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우울증 환자 증가를 ‘예견된 상황’으로 바라봤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덴마크의 경우 전국에 20곳의 자살예방 클리닉을 설치해 위기개입과 근거기반 치료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시행해 성과를 거뒀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에 정신건강의 문제를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겼는데 이제는 조직과 공동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병원 제공

국내 우울증 환자 100만명을 넘어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01만4182명이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았다. 이는 2010년(53만927명)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우울’은 모든 인간이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다. 백 교수는 “우울한 감정 자체는 모든 사람이 겪는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라며 “우울한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는 답이 나온다면 ‘당신이 제일 문제다. 따라오라’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연구도 있다(웃음)”고 말했다. 

 

우울한 ‘감정’과 구별되는 우울증은 2주 이상의 수면 장애, 폭식 등 신체적 변화, 일상생활 등의 기능 저하로 인해 사물과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지변화’가 동반됐을 때 진단된다. 우울하다는 감정 외에 무기력감이나 부주의함 등으로 ‘게으르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인지변화 때문에 우울증의 60%는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2015년 심리부검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중 88.4%는 정신 건강 문제가 있었고 이 중 74.8%가 우울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사망 직전까지 우울증 치료를 지속해서 받은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 급성기 치료를 받고 나면 일시적으로 호전하는데 이때 스스로 ‘다 나았다’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첫 번째고, 치료 과정 중에 ‘나는 효과가 없다’며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두 번째입니다. 우울증의 증상 자체에 ‘절망’이 포함됐기 때문이죠.”

특히 ADHD 등 공존질환이 있거나, 성격장애, 알코올·마약 등 중독이 있을 때는 유난히 회복이 안 된다. 중독은 알코올이나 마약 등 물질중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스마트기기, 미디어 등 행위 중독 역시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 백 교수는 “이런 미디어 중독은 많은 자극에 노출되면서 대인관계는 줄이는 등 우울과 연관이 높다는 연구가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라우마 경험,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은 ‘특정한 사람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당장 내일, 누구에게라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이름을 남긴 많은 위인도 우울증과 싸웠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윈스턴 처칠도,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우울증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자신의 나약함을 비관한다. 같은 상황, 같은 경험에서도 스트레스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마다 기질이 다른 탓도 있다.

 

“승진이라는 기쁨이 새로움 추구 경향이 낮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죠. 또 위험회피 경향이 낮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에게 갈등 해결의 ‘리더십’을 요구할 때 사람 간의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지점에서 ‘나는 어떤 기질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도움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마찬가지다. 의사라고 왜 스트레스가 없겠냐만, 과거에는 자기 우울증도 조절 못 하는 정신과 의사라는 비난을 우려해 쉬쉬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끼리도 피어리뷰(peer review) 혹은 슈퍼비전(supervision)이라고, 자신의 괴로움을 동료나 선배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이런 경험은 오히려 환자들이 ‘선생님은 몰라요’라고 말할 때 ‘저도 그 마음 잘 알아요’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환자의 회복에도 좋은 역할이 되기도 하죠.”

 

백 교수도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고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세상을 떠나자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을 경험했다. 사건 영상만 100번도 넘게 본 백 교수는 과호흡에 손 떨림, 반복되는 악몽 등을 경험한 것이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 경희대병원 제공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증가하면 이를 다루는 사회도 변화해야 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이다. 사람들은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라고만 기억하지만 이들 국가도 40년 전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 인구 500만명의 국가 핀란드는 1980년대 한해 1800명의 자살자 수로 유가족을 전부 만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백 교수는 우리 사회 역시 이렇게 치료가 중단된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를 만들고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적 연결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뿐 아니라 스웨덴 등 행복지수 높기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도 7명 중 1명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나라 10명 중 1명보다 높죠. 그런데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위입니다. ‘스위스 치즈 이론’이라고 아시죠? 줄줄이 난 구멍 중 하나의 시그널이라도 잡아낸다면 마지막 자살까지 막을 수 있겠죠. 가족이든, 의사든, 조직이든, 사회든 한 곳에서만 그 역할을 해주면 되는 겁니다. 실제 환자 중에서 내 마음을 알아줄, 내 손을 잡아줄, 한 사람이 있다는 확신만으로 급격히 호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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