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관문 상 벤투역 거대한 아줄레주 작품에 포르투갈 역사 담아/카르무 성당은 외벽 전체가 아줄레주/포르투 대성당 돌기둥 ‘페로우리뇨’엔 노예 처벌하던 어두운 역사도/76m 종탑 돋보이는 클레리구스 성당·알람브라 궁전 닮은 볼사궁전 아랍홀도 꼭 가봐야
기차역 벽면을 가득 채운 2만여개의 타일 장식. 흰 바탕에 코발트 블루로으로 그린 그림은 한땀한땀 영혼을 불어 넣은 듯, 100년의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역시 포르투갈 건축 장식을 상징하는 매혹적인 아줄레주(azulejo)의 걸작답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포르투 상 벤투역(São Bento)으로 한발 들어서는 순간, 한계를 뛰어넘은 거장의 아름다운 예술혼이 뜨거운 전율로 다가온다.
◆아주레주의 걸작 상 벤투역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 여행자들이 장거리 열차가 오가는 캄파냥 역을 거쳐 구도심으로 들어설 때 자연스럽게 상 벤투역을 거치게 된다. 교외를 오가는 단거리 열차의 종착역이 상 벤투역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아치형 창문에 적힌 ‘PORTO’ 글자 위에 녹색 시계가 장식된 고풍스러운 상 벤투 플랫폼은 한눈에도 오랜 역사를 품은 듯하다. 아치를 통과해 중앙홀로 들어서는 순간, 여행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터뜨린다. 모든 벽을 빈틈없이 채운 거대한 아줄레주 타일장식의 그림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전 유튜브 동영상을 수도 없이 봤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어떻게 기차역을 이런 예술작품으로 도배를 할 수 있었을까.
상 벤투역은 원래 성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던 곳으로 16세기 화재로 폐허가 된 뒤 방치됐던 곳을 카를로스 1세가 기차역으로 복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마르케스 다 실바와 화가 조르주 콜라수가 참여했는 무려 2만장의 타일을 사용해 세상에 둘도없는 기차역으로 꾸몄다. 대형 작품들은 포르투갈의 다양한 역사를 세밀화처럼 담고 있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의 건국과 포르투갈 초대 왕 아폰수 1세의 즉위, 이베리아 반도를 무어인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전투인 레콩키스타, 주앙 1세의 즉위와 아비스 왕조의 시작,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엔리케 항해왕자, 인도항로 개척을 위해 떠나는 바스쿠 다가마, 포르투갈 일상 생활과 풍경 등을 연작으로 그려 대작을 완성했다.
기차역, 성당, 레스토랑은 물론 일반 가정집 등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아줄레주는 푸른색이란 뜻이 아니라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 뜻의 아랍어 알 줄리이카(al Zulaycha)가 어원이다. 이는 아줄레주 장식이 이슬람 문화에서 가져왔음을 의미하는데 마누엘 1세가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의 타일 장식에 매료돼 자신의 왕궁을 아줄레주로 장식한 뒤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져갔다. 신트라 문화경관지구 신트라 궁전의 아줄레주가 바로 최초의 포르투갈 아줄레주 장식이다.
건물 내부, 외부, 벽, 바닥, 천장을 장식하는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의 건축에 가장 많이 쓰이는 중요한 요소다. 초기 아줄레주는 흰색과 파란색을 사용했지만 노란색, 초락새 등으로 다양해졌고 역사적인 장면, 일상생활, 종교적인 내용 등 다양한 내용을 담거나 기하학적 패턴, 꽃무늬도 많이 사용한다. 리스본과 포르투의 거리를 걷다보면 아줄레주를 활용한 접시, 머그컵, 그림 작품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여행 기념품으로 인기가 높다.
◆외벽 전체를 아줄레주로 꾸민 카르무 성당
포르투는 아줄레주 장식이 돋보이는 역사적인 건물들이 몰려있는데 렐루서점 인근의 카르무 성당(Igreja do Carmo)은 외벽 전체를 아줄레주로 채워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1768년에 바로크양식으로 지은 카르무 성당 동쪽 외벽은 하얀색 타일에 푸른색으로 그린 아줄레주가 빼어나다. 성서의 내용을 담은 아줄레주를 배경으로 무심코 걷는 모습을 촬영하면 손꼽히는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카르무 성당은 수도사를 위해, 서쪽에 붙은 카르멜리타스 성당은 수녀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영혼의 예배당’으로 불리는 알마스 교회 외벽도 1만5000개 아줄레주 타일로 성 프란체스코와 성 카타리나의 행적을 담았고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산투 일데폰소 성당(Igreja Paroquial de Santo Ildefonso)도 푸른색 아줄레주로 두 개의 종탑과 어우러지는 빼어난 외관이 돋보인다.
도우루강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포르투 대성당(Porto Cathedral) 광장으로 들어서자 여행자들이 높이 솟은 돌기둥 계단에 앉아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즐기고 버스킹 연주자의 공연이 더해져 흥을 돋운다. 그런데 여행자들이 쉬고 있는 돌기둥의 이름은 페로우리뇨(Pelourinho)로 발목을 묶는 형벌 도구를 뜻한다. 식민지 시대 죄인과 노예들을 묶어 놓고 공개적으로 가혹한 형벌을 내린던 어두운 역사가 담겼다.
아줄레주는 없지만 포르투 여행에 놓치면 후회하는 여행지가 클레리구스 성당과 종탑, 볼사궁전이다. 1749년 완공된 클레리구스 성당은 포르투 어디에서나 보이는 높이 약 76m 종탑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포르투갈 최초의 바로크 양식 교회로 매일 공연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타워 전망대는 입장료를 따로 내야한다.
볼사 궁전은 포르투 여행자들이 잘 모르는 숨은 여행지. 아줄레주는 없지만 알함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은 화려한 이슬람 장식이 장관이라 꼭 들러봐야 한다. 도우루강변 히베이라 거리로 이어니지는 엔히케 항해왕자 조각공원 서쪽에 자리잡은 볼사궁전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장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건축양식인 신고전주의를 기반으로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진 웅장하고 화려한 장식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볼사궁전은 가이드 투어로만 내부를 둘러볼수 있다.
원래 14세기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던 곳으로 화재로 폐허가 된 뒤 1850년 궁전으로 지어 포르투상업협회 본부로 사용됐다. 이후 주식거래소, 와인거래소를 거쳐 지금은 포르투를 찾는 국빈을 맞는 행사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2층 계단으로 올라서자 아름다운 회화, 조각, 타일로 장식한 방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장 인기있는 곳은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본떠 만든 아랍홀. 정교한 아랍 문양과 화려한 금장식으로 가득 치장된 놀라운 풍경이 순식간에 알함브라 궁전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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