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대만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전 세계 경제전문가들 이목이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로 쏠렸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좌지우지하는 TSMC가 지진 여파로 생산 차질을 빚을지 우려한 것이다. 마침 삼성전자 등 우리 반도체 기업에 반사이익을 안길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금세 잦아들었다. 세계 각국이 TSMC에 지원의 손길을 내민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악재가 오히려 TSMC 입지를 강화해 우리 기업과의 격차를 키운 모양새다.
일본에서는 지난 6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구마모토현 TSMC 공장을 찾아 보조금 지급을 언급했다. TSMC 구마모토현 1공장은 설비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 최대 4760억엔의 보조금이 제공돼 지난 2월 문을 열었다. TSMC 2공장에는 7320억엔의 지원이 결정됐다. 1·2공장을 합쳐 일본 정부가 TSMC에 지급하는 보조금 규모는 총 1조2080억엔(약 10조8000억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지원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면 이런 전폭적 지원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양국의 독특한 관계의 맥락을 봐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대만은 1895년 4월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거둔 승리의 대가였다. 당시 일본은 서구 열강에 못지않게 식민지 경영을 잘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 힘썼다. 지배 초기를 제외하고는 체제 자체가 덜 억압적이었다. 대만 입장에서도 일본을 이전 네덜란드와 스페인, 청나라에 이은 또 다른 지배세력 교체로 봤다. 50년간 이어진 식민 지배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같은 일제 식민통치 역사를 가진 우리와 대만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판이하다. 대만인들 가운데는 반일 감정이 심한 한국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도 더러 있다. 지난 9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대만 강진에도 일제 식민지배기에 건설된 다리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대만에서 감사하다는 소리까지 나왔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분명한 것은 반도체 패권 다툼이 개별 기업 간 경쟁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점이다. 일본과 대만의 결속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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