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술로 한반도 영공을 지킨다.’ 1950년대 부활호 비행기를 시작으로 기술과 경험을 쌓던 한국은 KF-21을 개발, 국산 전투기로 영공을 지키는 단계에 바짝 다가섰다.
외국에 의존하던 항공무장 국산화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말 KF-21용 단거리 공대공유도탄-Ⅱ 개발이 결정됐고, 장거리 공대공유도탄 개발 사업도 본격화됐다.
KF-21에서 쓰는 유럽산 미티어(METEOR) 공대공미사일을 대체하려는 것이다. ‘별똥별’이라는 뜻을 지닌 미티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성능 미사일로 꼽힌다.
국산 항공무장을 개발·양산하면 기술 발전과 수출 등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와 기술적 난도, 전장 환경 등을 고려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세계 최고 수준 기술 적용
방위사업청은 26일 제161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장거리공대공유도탄 사업을 심의·의결했다.
2025~2038년 1조5700억원을 들여 KF-21용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국내 개발한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만든 KF-21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의 연동 등도 추진한다.
방위사업청은 사업타당성조사를 통해 사업추진계획 적절성을 확인하고 관련 기관과 세부방안을 검토한 이후에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산 공대공미사일 개발은 방위사업청이 지난해 공개한 국산 항공유도무기 발전방향 로드맵과 맥이 닿아 있다.
2030년대에 단·장거리 공대공미사일과 공대함미사일, 정밀유도폭탄을 국산화하고, 2040년대에는 극초음속미사일과 레이저 무기 등을 사용한다는 야심찬 비전을 담고 있다.
이때 공개된 국산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컨셉은 미티어와 매우 유사했다.
KF-21에는 유럽 MBDA가 만든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쓴다. 따라서 미티어 수준의 성능을 목표로 국산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유럽 방산업체 MBDA가 만든 미티어는 세계 최고의 공대공미사일로 평가받는다. 마하 4.5로 비행해 200㎞ 거리에 있는 전투기를 공격한다.
기존 공대공미사일은 비행 도중 엔진 연소가 끝나면 관성 운동 에너지로 적기를 향해 날아간다. 이는 명중률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티어는 덕티드 로켓을 장착, 이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덕티드 로켓은 일종의 제트엔진이다. 동체에 있는 공기흡입구로 빨아들인 공기를 연소시켜 추력을 낸다.
공기흡입이 원활하면 연료 소진 시까지 처음의 추력을 유지할 수 있다. 흡기량을 조절하면 추력 조절과 엔진 가동 중단 및 재가동도 가능하다.
비행 도중 엔진 연소를 중단하고 관성비행을 했다가 엔진 재연소를 하면 사거리가 대폭 증가한다. 이런 식으로 연료를 남겼다가 적기가 가까워지면 다시 급가속해 적기가 미사일을 회피하지 못하게 한다. 데이터링크를 통해 미사일이 표적을 재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티어의 특성은 한국이 주목할만한 것이다. 주변국이 고속 비행이 가능한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마하 4로 150~200㎞를 날아가는 PL-15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2016년에 배치했다. 미군 AIM-120 공대공미사일보다 더 빠르고 멀리 비행한다. 조기경보기나 공중급유기 타격용으로 개발된 PL-17은 마하 4로 최대 400㎞를 날아간다.
미국 록히드마틴도 AIM-260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만들고 있다. 마하 5로 160~300㎞를 비행한다. 일본은 영국과 합작해 차세대 장거리 공대공미사일 개발을 추진중이다.
국내에서도 ADD를 중심으로 유도조종 등의 분야에 대한 덕티드 엔진 핵심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판 미티어 개발을 위한 작업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리스크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기존 로켓엔진은 연료와 산화제를 섞어서 연소한다. 덕티드 엔진은 산화제 대신 공기를 쓴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고기동·고속 상황에서도 공기흡입구에 공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비행경로를 설정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데이터링크 기술도 높은 수준에서 필요하다.
다양한 유도무기를 개발한 경험을 지닌 MBDA도 미티어를 만드는데 17년이 걸린 이유다.
공대공 유도무기 개발경험이 많지 않은 한국이 예정된 개발일정을 지킬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ADD가 이전부터 핵심기술 개발을 추진해왔지만, 이를 한데 모아 공대공미사일에 결합하고 KF-21에 체계통합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검증된 공대공미사일을 전투기에 체계통합할 때는 거액이 소요된다. 사용 이력이 별로 없는 신형 미사일을 전투기에 결합하면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들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설령 지상에서 공중으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해도, 공중에서 복잡한 기동을 하면서 날아가는 공대공 상황과는 기술적 난도를 비교하기 어렵다. 기술적 리스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무조건 독자 개발할 필요는 없어
일각에선 모든 항공유도무기를 국내에서 개발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KF-21 개발을 계기로 항공유도무기 10종을 개발, KF-21·FA-50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고 유도무기도 수출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전투기 시장의 추세는 다양한 항공무장을 즉각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한다. 사용 가능한 항공무장 옵션이 많다면, 잠재적 고객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항공무장 옵션 전체를 자체 개발한 것으로 채워야 할 지는 미지수다.
프랑스 라팔은 자국산 위주로 항공무장을 쓰지만, 프랑스는 오랜 기간 유도무기와 전자장비를 만들어 판매하고 전투기에 통합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개발을 뒷받침할 산·학·연 기반과 국가적 능력도 탄탄하다.
반면 한국은 연구개발에 투입할 재정과 인력이 제한되어 있고, 경험도 부족하다. 공대공·공대함·공대지 미사일과 대레이더미사일, 정밀유도폭탄까지 국내 개발한다고 하면 인력과 비용 등의 문제로 프로그램이 삐걱거릴 수 있다.
사실상 KF-21에만 쓰일 국산 항공무장의 실제 도입 물량도 제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는 발당 단가 상승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구매 규모 축소를 불러일으켜 단가를 또 상승시키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기술적 리스크가 크지 않고 국내에서 필요성이 매우 높은 것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해서 단기간 내 개발하되, 나머지는 제3국 제품을 조합해도 충분하다.
스웨덴 그리펜 전투기의 사례를 보자.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은 미국(AIM-9), 독일(IRIS-T), 영국(아스람), 이스라엘(파이슨)산을 쓴다. 중거리는 미국(AIM-120)과 프랑스(미카)산, 장거리는 영국(미티어)를 사용한다.
공대지미사일은 독일(타우러스)과 미국(매버릭)산, 정밀유도폭탄은 미국산 등을 쓴다. 스웨덴 제품은 공대함 미사일 정도다. 그럼에도 그리펜은 태국, 브라질, 남아공, 체코, 헝가리에 수출됐고 잠재적 고객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전장환경 변화에 따른 기술적 대응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에서도 자폭드론이 대거 투입됐다. 이때 미 공군 F-15 전투기가 출격해 드론 수십여대를 격추했다.
한국도 이란처럼 북한 드론이 대거 침투하면 공군 전투기가 나서야 한다. 전투기가 대량의 드론을 격추하려면 최대한 많은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투기 기체를 대형화해 미사일 탑재량을 늘리거나 미사일을 작게 제작할 수밖에 없다.
KF-21을 크게 만들기는 어려우므로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작지만 파괴력과 정밀도가 높으며 빠른 속도를 내는 형태로 개발, 탑재수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택과 집중’ 전략처럼 기술적 리스크와 전장 환경 변화 등을 감안해서 꼭 개발해야 하는 것을 골라 집중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내는 ‘킬러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레이저 무기 등을 무장한 6세대 스텔스기가 등장하는 2030년대에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가 아닌 10~20년 후 전장 환경을 전망하고 무기를 개발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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