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정부에 일과 육아가 양립하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촉구했다.
10일(현지시간) 안사(ANSA),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출생아 수는 사람들의 희망을 나타내는 첫 번째 지표”라며 “유럽은 점점 더 늙고 지치고 체념한 대륙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아이들로 채워져야 할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차 매우 슬픈 장소가 돼가고 있다”며 “강아지와 고양이는 부족하지 않다. 다만 아이들이 부족할 뿐”이라고 한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인 정책과 과감하고 구체적인 장기적 비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머니가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게 해야 한다”며 “젊은 부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택 구입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에게는 “미래가 불안하고 저출산이나 전쟁, 전염병, 기후 변화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고 권했다.
교황은 무기 산업과 피임약 업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한 인구학 학자가 내게 한 말이 있다”며 “현재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는 무기 공장과 피임약 산업이다. 하나는 생명을 파괴하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방지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겠느냐”며 “추악한 모습”이라고 부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쟁을 부추기는 ‘죽음의 도구’를 생산한다며 무기 산업에 줄곧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과거 인공피임 반대 입장을 설명하면서 “토끼처럼 계속 출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피임약에 대한 교황의 발언에 이탈리아 가톨릭 보수 단체인 프로라이프 앤드 패밀리는 ‘피임약 사용을 둘러싼 막대한 경제적, 상업적 이해관계’를 비난하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지난 10년간 유럽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1.5명 내외에 머물고 있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7명을 기록한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일부 국가보다는 높다. 하지만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출생아 수가 37만9000명으로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이탈리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에 이어 출산율이 두 번째로 낮은 국가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저출산 문제를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국가적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출산율 감소 추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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