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새 내각도 친미·독립주의자 포진
양안 관계 ‘화해 무드’ 쉽지 않을 전망
대만해협 긴장 고조되면 한국에도 영향
산적한 국내 문제도 신임총통의 과제
20일 라이칭더(賴淸德) 당선인의 대만 신임 총통 취임식을 통해 민주진보당(민진당) 연속 12년 집권이 시작된다. 대만은 지난 8년 간의 민진당 집권 기간 친미·독립 성향을 내세우며 중국과 얼어붙은 관계를 유지한 만큼 신임 라이 총통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언급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로서는 양안이 가까워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라이 당선인의 취임사를 통해 대략적인 향후 양안 관계를 살필 수 있다. 앞서 자유시보 등 대만 매체는 차기정부에서 안보를 담당할 고위 관계자의 내부 브리핑을 인용해 취임사에서 라이 당선인이 “양안 간 현상유지를 다짐하고 새 정부가 안정된 현상이 침식되지 않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할 방침이라고 18일 전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라이칭더 정부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쌓은 기본을 계승해 안정적이고 착실한 접근법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현상을 유지하고 현상이 훼손하지 않도록 모든 당사자와 협력하면서 대만이 세계 경제와 지정학에서 불가결한 역할을 맡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라이 신임 총통의 임기가 시작되더라도 경색된 양안이 쉽사리 화해 무드로 변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중국은 대만 제1야당 국민당과 합의한 ‘92공식’(‘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되 그 표현은 각자 편의대로 한다는 1992년 합의)을 라이 당선인이 수용하길 원하지만 그는 차이 총통과 마찬가지로 이미 여러 차례 이와 관련해 거부 입장을 밝혀왔다. 중국 입장에서는 취임사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한다는 표현이 담기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로, 반면 라이 당선인이 취임사에서 독립 의지를 드러낸다면 양안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물론 취임사에서 ‘하나의 중국’을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며, 드러내놓고 독립 의지를 표명할 가능성도 낮다.
이처럼 ‘현상 유지’가 취임사에 들어간다 해도 중국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 있다. 라이 당선인은 지난달 민진당 3기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행정원장(총리)에 민진당 주석을 지낸 줘룽타이(卓榮泰) 전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지명했다. 그는 민진당 출범 때부터 핵심 간부로 활동한 대만 독립파로 알려져 있다. 또 국방부장으로 내정된 구리슝(顧立雄) 전 국가안전회의(NSC) 비서장은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 정부의 ‘분리주의자’ 제재 리스트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이런 내각 구성원들은 중국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고, 양안 관계 회복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 정치학자 민신페이는 블룸버그통신에 “라이 당선인이 어떤 연설을 하든 대만은 격동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과거 대만 독립에 대해 도발적인 발언을 해온 라이 당선인에 대한 중국의 의심은 한 번의 취임사로 가뀌기에는 너무 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라이 당선인이 취임하면 중국 지도자들은 사소하고 상징적인 대만의 행위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인 대응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당장 대만에 대한 압박을 고도화할 태세다. 중국 상무부는 19일 홈페이지를 통해 대만을 포함해 미국·유럽연합(EU)·일본산 폴리포름알데히드 혼성중합체(POM)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POM은 자동차 부품이나 전자·전기제품, 공업 기계, 운동기구, 의료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한국 역시 양안 관계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양안 간의 강경대치가 미·중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고, 이는 한국의 안보 상황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또 분쟁의 주 무대인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는 한국 물동량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파장이 크다.
대만 외교부는 라이 당선인의 취임식에 51개국 대표단에서 외빈 508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서는 브라이언 디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포함해 전직 관료 2명, 민간 인사 2명이 파견된다. 공식적인 정부 대표단은 아니지만 디스 전 위원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혀 대만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미국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양안 대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대만과 수교한 12개국 중에서는 마셜제도와 팔라우, 파라과이 등 8개국이 정상급 대표단을 파견하고 나머지 4개국은 부정상급, 외교장관급, 특사 대표단을 보낸다.
한국에서는 한국·대만 의원친선협회장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이 대만 정부 초청을 받아 이번 취임식에 참석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은호 주타이베이대표부 대표만 참석하고 정부 대표단 참석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초당파적인 친대만 국회의원 모임인 ‘일화 의원 간담회’ 소속 의원 30여명이 취임식을 찾는다.
양안 관계 관리와 더불어 산적한 국내 문제도 라이 당선인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라이 당선인은 여당인 민진당의 의석수(51석)가 제1야당 국민당(52석)보다 적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지난 17일 여야 입법위원들이 정부 견제 법안 처리 과정에서 난투극을 벌인 것이 어려움을 예고한다. 또 장기화하는 고물가, 낮은 경제성장률과 임금 등 민생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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