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류가 그렇게 대단하다던데? 한국 기업 모두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간다던데? 인구 1억명, 중위연령 32세, 성장잠재력이 엄청나다던데?…’
베트남에 대한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인생 처음 베트남에 간 기자가 호찌민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만났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소주 세계화’에 나선 하이트진로와 한국을 대표하는 뷰티브랜드 아모레퍼시픽입니다.
◆하이트진로
- “한국 드라마에서 이렇게 먹던데?” 소주 인지도↑
- 달달한 ‘과일소주’ 인기…증류주 시장 점유율 1위
베트남 호찌민의 한 한국 음식점. 삼겹살, 껍데기 등을 주로 파는 한국식 고깃집이다. 지난 7일 저녁 이곳을 찾았다.
분위기는 완전한 한국이다. 입구 왼쪽에서 손님을 맞는 커다란 진로 두꺼비부터 친숙하다. 매장 벽엔 소주 등 한국어 광고 포스터가 붙어있고 시종 K팝이 흘러나온다. 각 테이블에서 ‘치익-’ 고기 굽는 소리와 연기가 피어오른다.
평일 저녁인데도 손님이 많다. 15개 남짓한 테이블의 3분의 2가 찼다. 사장 이재석(52)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이 줄었음에도 주말에는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면서 “현지 연예인, 인플루언서 등이 즐겨 찾는 ‘핫플’로 통한다“고 말했다.
2개 테이블을 제외한 나머지는 현지인 손님으로 보였다. 이들의 테이블에는 어김없이 초록색 소주병이 놓여 있다. 오리지널 소주를 먹는 손님들은 한국인뿐. 현지인들은 모두 과일소주였다. 한국에 2015년쯤 출시되었다가 지금은 사라진 ‘∼에 이슬’ 시리즈다. 메뉴판에는 청포도, 복숭아, 자몽, 자두맛 소주가 있다. 청포도와 복숭아가 가장 많이 팔린다. 한병에 13만동, 한국 돈 7000원 정도로 싸지 않지만, 소주를 시키지 않는 테이블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이트진로 베트남 법인 직원 바오 응우엔(25)씨는 “한국 드라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면서 “‘한국식 바베큐는 소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 ‘나도 저렇게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한국 음식점과 소주를 많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녁 9시쯤, ‘개스트로바’로 불리는 한 술집. 음악이 쿵쿵 울리고 커다란 스크린에서 뮤직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는 이곳은 평일임에도 빈 테이블이 없었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 놓인 소주칵테일타워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다. 50cm가량 되는 투명한 원통에 얼음물과 과일이 채워져 있고 그 위에 과일소주를 꽂아 칵테일로 먹는 것이다. 달고 시원하면서 알코올도수는 낮아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즐기기 좋다.
이곳 매니저 보전쩡씨는 “베트남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소주 같은 증류주보다는 맥주를 많이 마시는데, 소주 칵테일은 맛있고 시원해서 베트남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며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밝혔다.
진로 소주는 1968년 처음 베트남에 수출을 시작했다. 지난 2016년 하이트진로가 ‘소주의 세계화’를 선언하면서 베트남에도 법인이 생겼다. 이후 참이슬과 진로를 비롯해 청포도에 이슬 등 과일소주 수출하고 있다.
K콘텐츠의 인기와 함께 소주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베트남 MZ세대 사이에선 한국 음식과 과일 소주를 마시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이제는 K푸드와 소주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외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주류시장의 93%를 맥주가 차지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진로 소주는 2021년부터 증류주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2019년부터 연평균 11%씩 수출이 늘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현재 베트남 타이빈성 산업단지 내 소주 공장 건립 추진 중이다. 하이트진로의 첫 해외 공장이다.
이용제 하이트진로 베트남 호찌민 지점장은 “현재 베트남 현지인,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 시장을 중심으로 한류와 소주 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며 “향후 공장이 건립되면 베트남 시장이 ‘소주 세계화’의 교두보로 활용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 ‘고급’ K뷰티 라네즈, 틱톡 팔로워 26만 ‘최대’
- 젊은층 많은 인구구조…성장잠재력 큰 시장
호찌민에 몇 개 없는 백화점 중 하나인 빈컴센터. 랑콤, 디오르 등 명품 화장품 브랜드 사이에 한국 브랜드 라네즈와 설화수가 나란히 입점해 있다.
지난 9일 이곳에 방문하자 유니폼을 입고 화사하게 화장한 직원들이 방긋 웃으며 맞아준다. 라네즈는 베트남에서 고급 브랜드로 통한다. 외국계 기업 팀장 정도의 연봉을 받는 커리어우먼이 베트남 라네즈의 타깃 고객층이다.
꾸준히 인기 있는 제품은 네오쿠션이다. 한국에선 자신의 피부톤에 맞춘 쿠션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베트남에선 어떨까. 아모레퍼시픽 베트남 법인 김수정 매니저는 “베트남 여성들은 자신의 톤과 상관없이 밝은색 쿠션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21호 이하가 주로 판매된다. 23, 25호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화이트닝 제품은 온라인에서 가장 매출이 큰 상품이다. 밤에 사용하면 다음 날 아침 피부 컨디션이 개선되는 슬리핑 마스크팩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북미 등 전 세계에서 히트 중이다.
바로 옆 설화수 매장에선 젊은 여성 고객 자음생 크림과, 진설 크림을 번갈아 발라보며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진설크림은 한국 돈 70만 원대, 최고가 크림은 100만원이 넘는다. 설화수는 회원 전용 스파를 운영하는 등 프리미엄 서비스로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안티에이징으로 유명한 설화수는 중년 이상이 주 고객이었으나 모델을 아이돌로 바꾸는 등 리브랜딩을 하면서 젊은층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현지 직원은 “한국 아이돌 블랙핑크가 인기가 많은데 멤버 로제가 모델이 된 뒤 화장품을 사겠다고 엄마와 함께 오는 청소년도 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2003년 라네즈로 처음 베트남에 진출했다. 이어 2013년 설화수, 2016년 이니스프리까지 론칭하며 다양한 베트남 고객층의 수요를 만족시키고 있다.
베트남은 더운 기후 때문에 색조 화장품 시장은 작지만, 화이트닝과 안티에이징 등 스킨케어 시장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고 활성화 돼 있다. 기술력을 입증한 한국 화장품이 K콘텐츠 인기와 만나면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베트남은 중국, 미국, 일본, 홍콩에 이어 K뷰티 수출국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이 아모레퍼시픽 사업에서 차지하는 현재 규모는 미미하다. 하지만 베트남은 미용·화장 시장 규모가 2027년에는 27억 달러(약 3조50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인 데다, 인구의 절반이 30세 미만이어서 향후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김 매니저는 “M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SNS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라네즈는 틱톡에서 26만명 팔로워를 보유해 베트남 내 뷰티브랜드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현지 고객에게 맞는 혁신 제품을 다양한 유통 채널과 협업을 통해 선보이며 지속적인 성장을 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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