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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는 물론 고가 아파트 주민
미혼 남녀 만남 주선에 팔 걷어
주위 사람이 보증해 줄 수 있는
친구와 지인간 소개 늘면 어떨까

얼마 전 서초구 한 고가 아파트단지에서 미혼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입주민 모임이 만들어져서 화제가 됐다. 미혼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건데, 사회적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누구를 만나던 그것은 당사자의 자유이고, 결혼을 꺼리는 풍토 속에서 청춘 남녀가 만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입주민으로 한정하여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 같아 바라보는 국민은 불편하고 씁쓸하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연애의 본질이다. ‘나는 솔로’와 같은 연애 프로그램을 봐도, 출연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이성에게 끌리고 결국 매칭에 성공하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결혼을 고려할 때 상대의 살아온 배경은 어땠는지, 가정은 화목했는지가 대표적인 검증 대상이 된다. 이런 점에서 비슷한 경제적 배경을 갖춘 입주민들 간의 만남은 연애와 결혼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묘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그러나 ‘동질성’과 ‘조건’이 동일시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삭막해진다. 내 짝을 찾아 방황하며 때론 상처도 입고 때론 깨달음도 얻는 그 소중한 과정이 도외시되고,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가’, 즉 ‘비슷한 경제적 조건’을 갖췄는가에 과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체적 노력 대신 ‘조건’이라는, 세속적 기준에 따라 만남이 규정되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입주민들의 ‘건전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반응이 싸늘한 이유이다.

입주민들의 의도를 무작정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남녀가 초경쟁 사회를 살면서 연애보다 경력과 성공에 몰두하다 보면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스포츠, 요가, 요리 등 각종 취미생활이나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 몰입하다 보면, 이성과의 만남보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여기에 지난 몇 년간 젠더 갈등이 심화하면서 청춘 남녀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데 더욱 조심스러워진 점도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자녀에게 닥친 비연애, 비결혼이라는 현실에 뒷짐 지는 부모보다 적극 나서는 부모가 더 책임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바야흐로 이성 간 교제의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사회적, 정책적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선 이유이다. ‘솔로몬의 선택’으로 불리는 성남시의 남녀 매칭 이벤트를 비롯해 전남 담양군의 ‘솔로 탈출, 심쿵 in 담양’, 경북도가 추진하는 ‘미혼남녀 만남 주선 패키지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솔로몬의 선택’은 참여 경쟁률이 6대 1에 달하고, 뉴욕타임스나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의 집중 조명을 받을 만큼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렇게 지자체가 ‘결혼정보회사’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배경에는 실제 결혼정보회사 가입비가 지나치게 비싸, 가입을 고려하는 당사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현실이 숨어 있다. ‘내 짝 찾아 삼만리’에 수백만원을 써야 하는 냉혹한 현실에 좌절하는 청춘들이 지자체가 제공하는 합리적이면서 검증된 만남 프로그램에 눈을 돌리는 이유이다.

청춘의 만남 주선 자체가 저출생 문제의 해법이라는 착각은 단호히 버려야 한다. 집값 문제, 여성의 경력 단절, 과도한 경쟁시스템 등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우선으로 펼치되, 건전한 공동체 형성과 관계 맺기, 그리고 남녀 간 상호 교류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만남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다행히 최근 지자체가 주도하는 만남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있고, 국가가 젊은 세대의 미래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작은 시그널이 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 사회는 ‘우리’와 ‘공동체’ 관념이 유독 강한 탓에 늘 주선자가 있는 미팅이나 소개팅이 남녀를 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반려자를 만난 계기가 ‘연애냐 중매냐’를 따졌고, 요즘은 남녀의 만남에 가족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연애남매’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프랑스와 같은 서구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문화적 관습인 셈이다.

특정 아파트단지와 지역에 함몰되지 말고 부모가, 지자체가, 또 정부가 청춘의 만남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또 부모를 넘어 친구와 지인이 서로 소개해 주는 맞선을 권하는 붐이 일어나면 어떨까? 우연한 술자리에서 랜덤하게 알아가는 만남도 좋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보증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만남도 꽤 소중할 것 같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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