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 화두 중 하나는 ‘저출산’이다. 글자 그대로 아이를 덜 낳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진원지는 2018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낸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 사전”이라는 보도자료이다. 이 보도자료는 ‘저출산’이라고 하면 인구 감소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므로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 두 용어는 그 사용 목적과 측정 방법에서 분명히 다르다. 이를 이해하려면 합계출산율과 조출생률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 수를 말한다. 그런데 한 여성이 평생 몇 명을 낳는지는 일일이 추적할 수 없으므로 그해 연령별 출산율을 가지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조출생률은 1년간 인구 1000명당 실제로 태어난 출생아 수를 말한다. 여기서 ‘조’는 한자로 粗라고 쓰는데, 그 의미는 ‘대략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출생률은 한 해의 중간에서 ‘대략적’으로 파악해 보는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두 용어의 사용 목적 또한 다르다. 합계출산율은 국가별 출산율을 비교하거나 인구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조출생률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그 측정 방법도 다르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을 기준으로 출생아 수를 ‘예측한’ 통계이고, 조출생률은 남녀노소를 포함한 인구 1000명당 ‘실제로’ 출생한 통계이다. 이 둘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저출산은 저출산으로, 저출생은 저출생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여성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를 알아보려면 저출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어느 지역의 인구 문제를 들여다보려면 저출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다른 용어를 성평등이라는 이념이나 감정에 휩싸여 함부로 바꾸거나 대체하려고 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오류를 몇 번이나 경험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다문화가정’, ‘다문화이해교육’이다. ‘다문화가정’은 2003년 한 종교 단체가 ‘국제결혼가정’이라는 용어가 차별적이라며, 그 대안으로 제시한 용어이다. 이 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국제결혼가정’은 차별적인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가 차별적이고 전 세계에서 한국만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또 다른 예로, ‘다문화이해교육’은 ‘다문화교육’이 이주배경학생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비판하면서 만든 용어이다. 이는 ‘다문화교육’이 본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 생긴 하나의 오해이다. 그리고 ‘다문화이해교육’이라는 용어는 실체도 없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용어이다.
요컨대 ‘저출산’과 ‘저출생’이라는 용어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나 지자체가 어떤 용어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관련 분야의 학자들에게 자문하는 게 현명하다. 물은 쏟기는 쉬워도 주워 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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