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오랫동안 사귄 연인” 주장…잔혹성 드러내
박학선·김레아·의대생 ‘교제 살인’ 등 사회적 충격
전문가 “복수심 내포돼 잔인한 경향…법 강화해야”
10일 오전 8시30분, 경기 평택시 안중읍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근 인파가 빠져나간 직후 이곳은 중년 남녀의 거친 고함으로 채워졌다. 괴성이 몇 차례 오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성의 손에는 흥건히 피가 묻은 흉기가 들려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마구 때린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할 때쯤 112에는 50대 남성 A씨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내가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신고했다. 현장에 머물던 A씨는 곧바로 붙잡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B씨와 오랫동안 사귀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평택경찰서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교제하던 여성을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평택에 거주하는 50대 독신 남녀인 A씨와 B씨가 오랜 기간 교제하다 여성인 B씨가 헤어지려 하자 A씨가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전날 술을 마셨고 B씨를 죽이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구체적 경위를 파악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상대 여성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한 ‘살의’를 띠면서 B씨를 여러 차례 찌르는 등 잔혹성을 드러냈다. 응급처치를 받은 B씨는 헬기로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으나, 과다 출혈로 중태에 빠졌다.
일반적인 ‘데이트 폭력’과 달랐던 건 스토킹 등 예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 신고 이력이나 신변보호 요청 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연인인 B씨를 살해하려 한 ‘관계성 범죄’로 보고 있다.
최근 이 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사회적으로 파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헤어지자”는 말에 교제하던 여성과 그의 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박학선(65)은 이달 8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그는 살인 사건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달 6일에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의대생인 20대 남성이 이별을 요구한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3월에도 김레아(26)가 경기 화성의 오피스텔에서 이별 통보를 하러 찾아온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3939명에 달한다. 2020년과 비교해 55.7% 급증했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은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상균 백석대 교수(경찰학부)는 “‘교제 살인’은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이 내포돼 잔인한 경향을 드러낸다”며 “청년·중년·노년을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범죄인 만큼 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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