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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칼럼]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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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30 22:56:51 수정 : 2024-06-30 22: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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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둘러싼 단단한 편협함 타파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통해 진일보
폭넓은 시야로 삶의 감사함 되새겨
새로운 나를 낳은 ‘순간’을 경험해야

한 여인이 눈에 든다. 2022년 사망한 할머니에게 2500만유로의 유산을 받은 오스트리아 여인 마를레네 엥겔호른. 그녀는 상속된 재산의 9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제대로 쓰기 위해 50인을 선정해 위원회를 꾸렸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나온 그녀가 이런 일화를 전한다. 어린 시절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로 궁금했단다. 왜 아파트에 살까, 정원이 있는 저택을 두고!

그렇게 성장한 그녀가 말한다. 특권층은 시야가 좁다! 시야가 좁은 그 사람들이 특권층의 사다리를 타고 중요한 자리 대부분을 차지한 사회는 경직된 패턴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해 보이는 삶이 실은 시야가 좁은 삶이었음을 선언하고 그 특권을 버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요구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더구나 30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그 시기에 그녀는 어떻게 당연히 내 것이라고 차려진 밥상을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물릴 수 있었는지. 도대체 어떤 시간을 경험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녀를 변하게 한 것은 대학이었단다. 대학을 다니며 온갖 다양한 주제를 만나 생각하고 토론하다 보니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대학은 그런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어떤 출신이든,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있든, 어떤 상처를 안고 있든 상관없이 치열한 자기싸움을 통해 ‘나’를 낳는 시간! 그렇지만 우리는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대학 자체가 사유의 힘을 믿지 않고, 솔선수범 취업준비처가 되려 하고 있으니.

‘데미안’의 유명한 명제가 생각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그런 순간을 경험해야 자기를 믿게 되고 힘을 빼고 살 수 있게 된다. 그 순간의 힘을 조명하고자 하는 음악예능 프로그램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순간의 변증법을 경험한 대가가 나올 경우엔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다. 내가 본 것은 심수봉편과 송창식편인데, 그들의 노래와 함께 그들을 있게 한 순간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송창식편에서 송창식은 ‘피리부는 사나이’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전한다. ‘웨딩케익’으로 인기를 누리며 무서울 것이 없었던 시절, AFKN에서 우연히, 미국 아마추어 블루스 대회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단다. ‘저들은 아마추어인데도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태도와 열정과 실력은 이미 아마추어와 프로의 분별을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인기 있다고 해서 프로일 수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며칠 동안, 아니 몇 주 동안 통곡을 했단다. 매일매일 통곡하며 과거를 씻어내는 데미안의 ‘순간’을 경험하고 나니 각인된 진실이 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노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노래하기가 수행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즈음 또 우연히 전주대사습놀이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진심으로 창을 하는 장인들을 보고 국악의 매력을 발견했다. 클래식 바탕이었던 그는 우리 가락의 힘을 발견했고, 그가 발견한 그 힘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를 만들어 불렀다. 그의 배짱으로 제일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그의 배짱과 대중의 배짱이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노래였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 늘 시간표대로 빡빡하게 살았던 학창시절 우리를 위로했던 노래, 그 노래는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모든 사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에도 생에 대한 감사함으로 남아 있는 순간, 순간들이 그대에겐 어떤 것이었는지. 좋아하는 그것을 갈고 벼르며 살아온 사람은,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영원이 시간 속에 임재한 순간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 이는 유한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믿는다. 시간을 벗어나 영원이 되어 버린 순간의 임재,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유한성과 무한성의 통합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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