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늘리기 혈안, 타인 고통 무심
방관한 유튜브, 정치권 책임 느껴야
불량 콘텐츠 삭제 의무화 법안 시급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에겐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 가짜뉴스를 즐겨 만들고 유포했다는 사실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경쟁자인 안토니우스를 낙마시키기 위해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에 빠져 로마를 배신할 것’이라는 소문을 냈다. ‘작전’은 주효해 ‘안토니우스는 로마 지도자감이 아니다’라는 여론이 확산했다.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최초의 황제로 등극한 데는 가짜뉴스의 위력이 절대적이었다.
프랭클린은 또 어떤가. 독립전쟁 평화협상 대표였던 그는 ‘영국군이 인디언들과 결탁해 미국의 애국자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영국 내 반전여론이 고조됐고 이는 미국 독립으로 이어진다. 권력자들이 오래전부터 정치적 목적이나 국익을 위해 가짜뉴스를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가짜뉴스는 진실을 가린다.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다.
디지털 미디어 유튜브의 등장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극대화하고 있다. 콘텐츠 양과 전파 속도가 이전과 비교 불가다. 국내 유튜브는 가짜뉴스는 물론이고 약점 폭로 협박, 정파 과편향·자극적 콘텐츠가 넘쳐나 ‘무법천지’라는 비판까지 듣는 지경이다. 인터넷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의 어두운 그늘이다. 불량 유튜버들은 수익과 직결되는 조회 수를 올릴 수만 있다면 타인의 명예훼손, 고통도 가리지 않는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지난 18일 “내게 조국 딸 조민씨와 왜 결혼했느냐고 따지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유튜브의 가짜뉴스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최근엔 TV 프로그램에서 ‘썸타는’ 사이로 나온 탤런트 김승수와 양정아 관련 가짜 영상도 나왔다. 한 달 전에 올라온 영상들은 ‘방송사들이 둘의 감동적인 결혼식을 생중계했고 가수 임영웅이 축가를 불렀다’는 황당한 내용 일색이다. 당사자들이 가짜뉴스라고 부인했지만, 영상들은 내려지지 않은 채 251만여회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이런 비정상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1000만 유튜버 쯔양 협박 사건과 국민의힘 전당대회 폭력사태도 특단의 유튜브 외적 통제가 시급함을 일깨운다. 쯔양 사건은 약점을 폭로하겠다고 겁을 줘 금품을 갈취하거나 사적 제재 영상으로 조회 수 장사를 하는 사이버 렉카 유튜버의 해악에 경종을 울렸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무분별한 폭로와 사적 제재는 피해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폭력사태가 유튜버들의 몸싸움에서 시작된 것은 이들이 우리 정치의 중심에 들어와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 유튜버는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분명한 찬반을 비즈니스에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음모론에 가까운 영상일수록 조회 수가 많아지니 수위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방송에 출연해 맞장구를 치는 정치인, 영상을 즐기는 구독자는 사실상 유튜버들과 공생관계다.
정파 과편향 뉴스나 가짜뉴스는 공론장을 황폐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지금 같은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에선 더욱 그렇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가짜뉴스의 사회학’(2024)에서 “한국 사회는 정파적 이념성을 중심으로 뉴스의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맞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정보는 허위로 간주한다. 뉴스의 진실성 여부를 사실이 아닌 신념으로 따진다”고 분석한다.
유튜버들의 탈·불법 돈벌이는 관용의 한계를 한참 넘었다. 문제는 유튜브의 영향력은 매스 미디어만큼 커졌는데 자율 규제의 대상일 뿐 방송법이나 언론중재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점이다. 불량 유튜버들의 숙주인 유튜브와 ‘힘센’ 유튜버들의 눈치를 보느라 보완 입법에 소극적인 정치권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때다. 검찰과 법원도 “고소당해봤자 끽해야 벌금 몇백만 원 나오고 끝나겠지” 소리까지 나오는 현실을 자성해야 옳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8월부터 가짜뉴스·혐오 표현을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삭제하도록 한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 중이다. 법을 어기면 최대 연간 글로벌 매출의 6%를 과징금으로 매긴다. 이런 법은 한국에 더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튜브 생태계를 정화할 법안 마련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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