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는 프랑스 파리 15구에서 거주하고 있는 ‘파리지앵’ 변호사다. 이달 초에 만난 발레리는 26일에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 개막식 자원봉사자로 뽑혔다. 발레리는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받은 올림픽 의류와 모자 등을 보여 주면서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발레리에게 파리 올림픽은 의미가 남다르다. 10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거니와 실내 경기장이 아닌 파리 시내 전체를 배경으로 야외에서 진행되는 ‘친환경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발레리는 그녀의 집에서 사진 앨범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사진 몇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20대로 보이는 앳된 발레리의 모습도 있었다. 발레리는 “프랑스가 첫 번째 우승을 한 월드컵 결승 전날 수많은 파리 시민이 샹젤리제 거리에 나와 한 마음으로 응원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발레리의 말은 쉽게 이해됐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는 모두 거리로 나와 계층·세대·성별 간 갈등을 초월해 하나 되는 ‘통합’을 경험했다. 발레리와 프랑스 시민들은 올림픽을 계기로 하나 되는 마음을 다시 느끼며 동시에 기후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17년 만에 다시 방문한 파리는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내 곳곳에선 야외 경기장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도 올림픽을 상징하는 커다란 오륜이 걸렸다.
이번 올림픽은 ‘친환경’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올림픽 경기 상당수가 야외 임시 경기장에서 진행된다. 임시 경기장에 쓰인 자재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재활용된다고 한다. 경기장 좌석이 아닌 인근 야외에서 경기를 보는 건 무료로 개방된다. 마치 파리 전체가 하나의 경기장이 된 것이다.
이 지점이 프랑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도다. 수상 경기도 파리를 관통하는 센강에서 진행된다. 예나 지금이나 구정물인 센강에 몸을 담가야 하는 선수들의 건강이 걱정되지만, 파리 사람들은 이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올림픽 인플레이션’은 고스란히 외국인 관광객의 몫이다. 프랑스 정부는 올림픽 기간 동안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을 편도 1회 기준 2유로15센트에서 4유로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파리의 숙박비와 식비도 50% 이상 오를 거라고 파리지앵들은 말한다.
올림픽 인플레이션은 파리 시민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프랑스 시민들은 7월 말부터 긴긴 여름휴가를 떠난다. 여름휴가에 진심인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휴가 기간이 무척 길다. 짧아도 한 달, 길면 두 달이다. 올림픽 기간 동안 파리는 파리지앵이 아닌 외국인의 도시가 된다.
물론 친환경을 표방하는 올림픽이라 해도 자본주의적 발상을 추가할 수 있다. 속은 좀 쓰리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어느 정도 ‘올림픽 특수’ 물가를 적용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새로운 도전 이외에 올림픽 인플레이션 역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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