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뒤늦게 “사태 예의주시”
‘긴급 경영안전자금’ 지급도 검토
이커머스 업계 자본 건전화 시급
이커머스 업체 위메프·티몬의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 여파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위메프·티몬에 입점한 6만여 판매업체들은 상품을 건네고도 제때 대금을 받지 못하니 ‘이러다 도산하는 것 아닌가’ 싶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이 26일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에 신속한 대응을 주문한 만큼 관계 부처들은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뒤 맞춤형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이번 사태가 영세 판매업체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지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미정산액은 1700억원에 이른다. 한국소비자원이 24, 25일 이틀간 접수한 관련 상담 건수만 4000건이 넘었다고 하니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두 기업 사옥은 조속한 판매대금 정산 및 상품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몰려들어 극심한 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은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 중에서 시장 점유율이 낮고 자금력도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 일각에선 “유동성 부족으로 독자 생존이 사실상 어렵다”는 진단까지 내놓는다. 그렇더라도 회사 역량이 닿는 데까지 자구노력을 기울여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업인으로서 도리일 것이다.
이날 대통령실은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니 다행이다.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 후 중기부는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급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이는 소상공인들이 재해로 손해를 입거나 지역경제 위기, 감염병 유행 등으로 영업에 차질이 생길 경우 행하는 대출 등을 뜻한다. 중기부는 위메프·티몬에 입점한 판매업체 및 그들과 거래해 온 소상공인들이 자금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지원 자금이 마구잡이식으로 집행되어선 안 되겠으나,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도 곤란하다. 지금 당장 정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금줄이 막혀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영세업자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KB국민은행이 위메프·티몬 대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 지원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은행 측은 “정산 대금 미지급으로 자금 경색을 겪는 소상공인들에게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밝혔는데 올바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영세 판매업체들의 줄도산은 결국 그들과 거래해 온 은행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위메프·티몬 대란의 여파가 금융권으로까지 확대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금융 지원책 마련에 동참하길 바란다.
이번 대란의 근본 원인은 자본력이 딸리는 일부 이커머스 업체가 유동성 확보는 소홀히 한 채 사업 규모만 키운 데 있다. 판매대금 정산 과정에서 과거 신용카드 돌려막기 결제를 연상케 하는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일관하다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위메프와 티몬을 계열사로 거느린 큐텐그룹 구영배 대표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금융감독원도 위메프·티몬의 자본 건전성 악화를 2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가 휘청거리는 동안 알리, 테무 등 중국 기업들의 한국 시장 잠식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정부가 금번 위메프·티몬 대란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을 근본 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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