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무시… 무단 횡단… 불법 유턴…
도로질서 준수의식 韓과 큰 차이
렌터카 운전허용 좀 더 신중해야
부임한 지 1년 가까이 지나 어느 정도 중국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운전대를 잡으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주로 놀라거나 화나는 감정이다.
보행자와 뒤섞여 횡단보도를 건너는 오토바이·자전거, 신호등의 빨간불을 아랑곳하지 않는 보행자와 오토바이 등이 매번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한국에서처럼 내비게이션과 신호에 의지해 운전하다가는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또 차량 주행 중에는 조금의 틈만 있으면 깜빡이도 켜지 않고 옆 차선의 차량이 불쑥 끼어드는 경우가 잦은데, 이때 신기했던 점은 그래도 뒤차가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면 신호가 바뀌었는데 바로 출발을 하지 않는다거나,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보내주려고 잠시 속도를 낮추거나 하면 여지없이 뒤에서 경적이 날아드는 것 역시 신기했다. 여기에 도로에 비보호 좌회전 구간까지 많으니 처음에는 언제 좌회전을 해야 할지 또는 정차를 해야 할지 등을 판단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반년쯤 지나자 나 역시 이런 교통문화에 조금 적응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질서처럼 보이는 교통환경 속에도 일종의 질서가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고로 길 위에 나동그라져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하루에 두 차례 목격하기 전까지는. 두 건의 사고 모두 신호만 제대로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멀쩡한 신호등을 무시한다거나 위험천만한 무단횡단과 불법유턴, 끼어들기 등은 단속만 하면 개선이 될 텐데 왜 그러지 않는지 의아했다. 흔히 법 집행기관 등의 안일함을 지적하는 기사를 쓸 때 ‘안 하나, 못 하나’는 식의 제목이 붙곤 하는데, 교통질서에 대해서만큼은 중국 당국이 아무래도 전자의 태도를 취하는 듯하다.
교통질서를 떠나 여기 와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시민들이 공안당국의 통제에 굉장히 순종적이라는 사실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통제에 불만이 터져나올법한 상황인데도 군말없이 협조에 응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 한국의 한 경찰 당국자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얼마나 한국 사회에 적응했는지, 오래 와있었는지는 한국에서 경찰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 경찰의 지시에 고분고분하게 따르면 중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됐고, 경찰이 뭐라고 해도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거나 거칠게 항의하면 한국 생활에 꽤 적응을 한 상태라는 것이다.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중국에서 공권력이 잘 먹히는 만큼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교통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시행한다면 금방 개선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그런 교통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제주도에 방문한 중국 개별 관광객에게 렌터카 운전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중국은 국제도로교통협약을 맺지 않아 중국 운전면허를 소지해도 단기 체류자는 국내에서 운전을 할 수 없는데, 중국 관광객 편의 증진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10년 전인 2014년에도 제주도는 중국인 관광객의 렌터카 운전을 허용하기 위한 ‘외국인 관광객 운전허용 특례’ 도입을 시도했지만 사고 증가 우려에 시행하지 못한 바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 관광객 기초질서 위반 단속을 다룬 기사에서 무단횡단하다가 적발된 중국인들이 범칙금 납부 통고서를 전달받자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무단횡단이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며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는 사례를 접했다. 시민의식을 지적하자는 게 아니라, 원래 그래왔기 때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느낌이 전해져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는 게 맞지만.
보행자가 이렇다면 운전자 역시 원래 하던 대로 운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고 위험이 작지 않을 것 같다. 보행자는 단속해 범칙금을 부과하면 된다지만 차량이 사고를 낸 다음에는, 특히 인명사고로 이어진 경우에는 어떤 대처를 하더라도 이미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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