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격 대표팀의 오예진(19·IBK기업은행)은 제주 표선중 1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흥미를 느껴 사격에 입문했다. 오예진은 고교생이었던 지난해 고등부에서 9개 대회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전관왕을 달성하는 등 실력이 크게 향상돼 사격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오예진을 국가대표로 키운 것은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던 홍영옥 국가대표팀 코치다. 제주여상을 졸업한 홍 코치는 모교에서 코치 생활을 했고, 오예진이 제주여상에 입학하면서 사제의 연을 맺었다. 전국대회 규모의 사격장 하나 없는 제주에서 오로지 책임감과 열정으로 오예진을 가르쳤고, 오예진도 대회 출전을 위해 제주도와 육지를 오가는 강행군을 잘 버텨냈다. 홍 코치는 지도력을 인정받아 올림픽 메달리스트, 실업팀 지도자들과 경쟁해 당당히 여자권총 대표팀 코치가 됐다.
오예진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갖고 개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지난해 2024 국제사격연맹(ISSF) 자카르타 월드컵에 출전해 공기권총 10m에서 개인전 1위, 단체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다만 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한 오예진의 기량은 인정하지만, 세계랭킹이 35위에 불과했던 그를 두고 대한사격연맹은 ‘메달 전망’ 선수로 분류하진 않았다. 이런 평가를 딛고 제주 출신의 스승과 제자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합작하며 한국 사격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오예진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샤토루의 슈팅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공기권총 10m 여자 결선에서 243.2점을 쏘며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오예진과 함께 출전한 김예지(32·임실군청)는 241.3점으로 은메달을 명중했다.
한국 사격 선수들이 올림픽 시상대에 함께 올라간 것은 2012 런던에서 50m 권총 진종오(금), 최영래(은) 이후 처음이다. 아울러 오예진은 2016 리우 때 50m 권총 진종오 이후 한국 선수로는 8년 만에 올림픽 결선 신기록도 세웠다.
27일 열린 본선에서 2위로 결선 티켓을 따낸 오예진은 이날 결선에서 거침없는 고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초반부터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결선 경기 초반부터 4발 연속으로 10점을 훌쩍 넘는 고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독주하던 오예진은 11발과 12발째에 잠시 9.2점과 9.5점으로 흔들려 김예지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재빨리 영점을 잡고 13, 14발째를 10.5점과 10.6점으로 장식하며 다시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이후 10발을 더 쏘는 동안, 오예진은 단 두 차례만 9점대를 쏘고 나머지 8발은 10점을 넘기는 집중력을 보여줬다.
마지막까지 추격하던 김예지도 뒤집기 힘들 만큼 격차를 벌렸고, 마지막 발을 10.6점으로 장식하며 243.2점으로 올림픽 결선 신기록을 수립하고서야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랑이 같은 장갑석 총감독은 눈시울을 붉혔고, 홍 코치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격장 안은 온통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2020 도쿄에서 은메달 1개에 그쳤던 사격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5월말 열렸던 미디어데이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목표로 내걸며 사격 강국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파리 현지에서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 동메달 2개를 추가해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 이틀째부터 금,은에서는 목표치를 채운 모양새다. 대회 첫날인 27일 ‘2000년생 동갑내기 듀오’ 박하준(KT)-금지현(경기도청)이 공기소총 10m 혼성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선물한 데 이어 이틀째엔 한 종목에서 금,은을 합작했다.
특히 금지현과 김예지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엄마 총잡이’들로 주목을 받았는데, 나란히 은메달을 따내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들은 물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경단녀’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사격에서 아직 많은 종목이 남아있는 만큼 사격 대표팀의 선전 여부에 따라 한국 선수단의 전체 목표도 상향조정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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