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책임 추궁·재발 방지 대책 세워야
금융위원회 등 정부 관계 부처는 29일 티몬·위메프 사태 수습을 위한 소비자·판매자 금융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파악한 전체 미정산금액은 2100억원 수준이라지만 앞으로 얼마나 확대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긴급경영안정자금 조성 등 5600억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실제 미정산규모는 500억원에 불과하다는 티몬·위메프의 해명과 정부의 위기 인식 격차는 이렇게 크다. 전산시스템 오류 때문이라는 초기 입장과 달리 티몬·위메프가 최근 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것을 보면 회사의 해명은 사실로 보기 어려운 듯하다.
정부가 이번 사태에 막대한 위기대응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온라인쇼핑, 즉 이커머스가 그 배경이다. 2010년 연간 25조원이던 이커머스 거래액은 지난 5월 한 달 거래액만 21조원에 이를 정도로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제법 오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소매판매액 약 640조원 중 이커머스 거래액은 약 229조원으로 그 비중이 25.4%에 이른다. 그런데 급성장한 이커머스의 중심에 티몬·위메프와 같은 온라인 거래 중개 플랫폼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평소 과도한 판매수수료, 판매가격 등 경영간섭행위, 불이익 거래조건의 강요, 부가서비스 이용 강제와 같은 불공정 행위가 지적되었으나 이번처럼 거래대금 정산 문제는 다수 소비자들의 집단행동 이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안정적인 거래대금 결제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 법체계에서 플랫폼 중개사업자는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규모 유통업자로서 규제를 받거나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보호가 강제되지 않는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의 관계는 기업 간 거래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전자상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사실상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 플랫폼에게 대금결제 과정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은 애당초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이커머스의 경우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에 카드사, PG사, 플랫폼이 대금을 지급받고 정산하는 거래 관계가 존재한다. 티몬·위메프는 거래업체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정산주기가 하루나 이틀인 G마켓, 쿠팡, 11번가 등 다른 이커머스와 달리 60일이라고 한다. 두 달 동안 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여지가 있는 것인데, 온라인 거래가 계속되는 한 이 기간은 사실상 무기한이 된다. 누구라도 이렇게 쌓인 자금을 그대로 손에 쥐고만 있기는 어렵다. 거래업체에 지급되어야 할 용도가 정해진 자금이라고 해도 말이다. 당연히 다른 용도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만 사용하더라도 어떤 제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플랫폼 사업자의 선의만을 믿는다는 것은 옳고 그름만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 플랫폼이 정산금 지급에서 갖는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고 지급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정산대금으로만 사용하도록 에스크로 제도, 책임이행보증보험 한도 확대 등 다양한 규제수단이 기존에 논의되었으나 막상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설마 하고 도입을 망설여 왔다. 결국 소비자들과 거래업체의 피와 땀과 눈물은 부정한 사업자가 자라나는 양분이 되고, 공적자금 투입으로 사태의 마침표가 찍힐 상황에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규제 도입에 나서게 된다.
소비자와 거래업체의 당장의 피해에 대해 신속하고 광범위한 대응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원인을 밝혀내고 철저한 책임 추궁과 규제 도입으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신용위기에 뱅크런이 일어나듯 소비자들은 티몬·위메프 본사로 달려가 피해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에는 이와 같은 실력행사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연히 거래대금으로 지급되어야 했고 회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정산대금이 온데간데없다면, 이러한 일탈행위를 막을 거래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소비자와 거래업체를 보호하고 온라인 중개 플랫폼 사업자의 욕망의 무한질주를 막기 위한 온라인 중개 플랫폼 사업활동의 규제와 감독 당국의 지속적인 감시라는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됐다.
이동형 변호사·소비자공익네트워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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