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은 경쟁 상대 등 다양한 참여자의 반응을 고려해 최적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경제학·수학 이론이다.
이는 특히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강조된다. 하나의 정책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혔고, 그로 인한 득실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이해관계자마다 최적의 전략을 찾아 저항하기 때문이다. 시장 행위자의 반응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정책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잠재적 구매자든 모든 국민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된 부동산 관련 정책이 대표적이다. 집값 안정을 위해 세금을 올렸지만 세금을 얹은 금액만큼 부동산 매매 가격이 오르는가 하면,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 계약갱신 청구권을 만들었지만 집주인이 ‘미래 인상분’까지 선반영하거나 만기가 도래했을 때 과도하게 금액을 부풀리는 식이다. 시장 참여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가 빚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과열로 투기과열 지역을 지정하면 “여기가 정부가 인정해준 부동산 상급지”라며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는, 심리적인 효과까지 더해진다.
작금의 의정 갈등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하자, 전공의는 지난 2월 집단 사직으로 응수했고, 정부는 사직서 수리 금지로 맞섰다. 갈등이 시작된 2∼3월엔 보건복지부도, 전공의도 “모든 시나리오를 다 검토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서로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미 2000년, 2014년, 2020년 세 번의 싸움이라는 경험치가 각자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던 몇 가지 변수가 있었다. 전공의 ‘탕핑(?平·드러눕기)’이 장기화한 것이다. 정부는 마무리를 위해 결국 기존 입장을 뒤엎고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처벌 없는 사직서 수리를 결정했다.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었지만 기대와 달리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나서 사직 전공의 외 추가 전공의를 받지 않으면서 전공의 없는 상태만 길어지게 됐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번 싸움의 변수로 의료계 불신을 꼽았다. 한 필수의료 관련 교수는 “십수년간 각 학회 차원에서 의료기관 질평가, 이송 시스템 개선을 촉구하고 저수가 개선·당직 수당 문제 등을 꾸준히 제기했지만 정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아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번 증원의 명분은 응급실 뺑뺑이, 고사 직전의 필수의료 살리기였던 만큼 필수의료 관계자들은 최소한 정부의 편에 설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계는 인기·비인기과, 개원의·종합병원, 교수·전공의, 수도권·지방 등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곳이다. 정부가 갈등 와중에라도 필수의료계와 지방의료계가 혹할 만한 지원책을 계속 쏟아냈으면 아마도 ‘갈라치기 효과’로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며 “이 와중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그동안 당위적으로 반복해왔던 의료전달체계 개선, 전문의 중심 상급종합병원에 그치고 있고, 이마저도 구체안이 빠졌으니 믿음이 가겠냐”고 한숨 쉬었다. 추가 정책의 속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책이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때 “관련 행위자 탓”은 가장 쉬운 선택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는 집주인의 탐욕이나 투기꾼이 지목됐다. 의·정 갈등에도 의사 ‘집단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시장을 움직이는 행위자이든, 불신이든, 어떤 변수든, 결국 이를 계산하지 못한 것이 정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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