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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美 버지니아와 阿 수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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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21 23:22:58 수정 : 2024-10-21 23: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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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한국으로 오물풍선을 날린다며?”

워싱턴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지난여름, 아이의 학교 행사에 참석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학부모 매슈에게서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매슈는 종종 한국과 북한에 대해 질문하곤 했는데 그날 주제는 오물풍선이었다. 매슈는 오물풍선 소식을 NPR 라디오에서 들었다면서 정말 재밌는 뉴스라고 껄껄 웃었다. ‘더럽다’, ‘역겹다’는 단어들을 섞어가며 비무장지대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고,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면 머리 위로 오물풍선이 날아다니는 것이냐고도 물었다. 자신이 태어난 버지니아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가족을 환영했던 매슈에게 오물풍선이 날아다니는 서울 하늘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영준 국제부 기자

“한국은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어요.”

학교 행사가 끝나고 취재원과의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우버에 올라탔다. 수염이 덥수룩한 흑인 기사가 영어로 대뜸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믿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고객정보에 이름을 보고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유창한 한국어로 “저 진짜 한국사람 맞아요”하고 너스레를 떨 때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자신이 아프리카 수단의 외교관이라고 소개했다. 2010년대 초반 한국에서 5년 동안 근무했고, 서빙고동에 살았으며, 서울대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베트남을 거쳐 미국에 근무하다 2023년 발발한 수단 내전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파견된 신문사 특파원이라고 소개했더니 그때부터는 운전이 걱정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우버기사 사이프의 이름은 이후 미국 국무부의 외교관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복귀한 뒤 ‘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을 부양하고 있다’는 안전안내문자를 받을 때마다, 아내가 등굣길에 아이들과 오물풍선을 보았다고 이야기할 때, 머리 위로 오물풍선이 떠다닐 때 그날의 대화를 떠올린다. 비록 단 두 사람과의 대화, 30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의 일이지만 한국의 현실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의 삶이 미국 버지니아와 아프리카 수단 사이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를 보면 한국 국민들은 당분간 북한의 오물풍선을 머리 위에 얹고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겨울에도 북서풍 이점을 활용해 오물풍선 부양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을 듣고 있자면 정부의 무대책에 한숨이 나온다. 북한의 오물풍선과 국민의 불안감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이 오물풍선을 처음 한국으로 날려 보냈을 무렵, 워싱턴 싱크탱크의 베테랑 한반도 전문가는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 온 사람들이 (북한의) 모든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 북한은 (오물풍선으로) 그들을 놀라게 했다”고 했다. 앞으로 새로운 것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의미라 의미심장하다. 버지니아에서 서울 하늘을 걱정했던 매슈에게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서울을 그리워하던 사이프에게 맞장구치지 못한 답답함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박영준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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