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문예바다가 기획한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아홉 번째로 이혜선 시인의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가 출간됐다.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이혜선은 삶을 영위하면서 할퀴어지는 상처를 스스로 핥으며 아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그러나 그 다행스러운 자가 치유 능력에 대한 철학적 사유, 이 세상의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현상은 근원적으로 둘이 아니며 관계의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는 불이(不二) 사상으로 이 사회를 통찰하고 있다.
시인은 ‘인간이라는, 거기 더하여 여자라는 삶의 덫에 치여서 내 꿈의 별은 바라보지도 못한 채 고개 숙이고 동동거리며 살아온 지난 삶의 날들이, 시선집을 엮으려고 펼쳐본 젊은 날의 시집 속에서 아프게 걸어 나왔다’고 <시인의 산문>에서 고백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의 일기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오히려 변해가는 사랑을 느끼면서 ‘쉽게 변하는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겠다’고 썼던 당돌한 아이였는데, ‘내면을 흡족하게 채우지 못해서 부끄럽다. 그래도 빈속에 시를 만나고 갈망과 결핍을 느끼는 삶이어서 고맙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시 <그대 안의 새싹>에서 시인은, 아픔과 절망 속에 지속되는 삶의 나날 속에서 스스로 자기 상처를 핥으며 치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한편으로는 고마운 자가치유 능력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생활시로 표현하여 많은 독자와 공감하고 싶다고 전한다.
시인은 ‘시는 일상의 굴레에 매여 또는, 그날이 그날 같은 메너리즘에 빠져 기계적으로 걸어가는 우리 삶을 일깨우고 쓰다듬어 꿈을 꾸게 하고 묻혀버린 삶의 핵심에 가닿게 만들어 준다.’ ‘시는 그리움을 더 그립게 하고, 사랑을 더 사랑하게 하고 슬픔과 아픔의 껍질을 깨어 더 슬프고 더 아프게 하여 치유에 다가가게 한다. 잠든 영혼을 깨워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心眼)과 혜안(慧眼)을 가지게 한다. 시 안에서 우리는 장자가 되기도 하고 나비가 되기도 하고 장자인지 나비인지 모두 잊어버리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에 들기도 한다. 그래서 시는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이상주의자의 꿈 꾸기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1부 ‘누가 나뭇잎 푸른 손 흔드나>에 18편, 제2부 <돌의 심장 근처 어디쯤>에 17편, 제3부 <억겁을 찰나로 불타고만 있는지>에 19편, 제4부 <젖어서야 타오르는 꽃불 하나>에 17편 등 71편을 수록했다. 시집은 서정적인 문체에 감동적인 표현으로 독자 반응이 좋아 재판 인쇄에 들어갔다.
시인은 1950년 경남 함안출생으로 1981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神의 한 마리>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 <새소리 택배><운문호일> <흘린 술이 반이다>과 저서로<시가 있는 저녁> <문학과 꿈의 변용> <아버지의 교육법> <이혜선의 명시산책>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과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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