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동남아/ 현시내/ 한겨레출판사/ 2만1000원
동남아시아는 역사적으로 풍부한 천연자원과 이권을 노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다. 오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후에도 내란, 쿠데타, 독재 등 다양한 풍파를 겪었다.
동남아의 음식에는 그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북부 베트남의 승리로 끝나면서 다수의 남부 베트남인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전쟁 난민이 되어 미국과 제3국으로 유입됐다. 베트남 쌀국수 ‘퍼’의 세계화는 이렇게 이뤄졌다. 베트남 쌀국수가 각국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제국주의 통치와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의 여정을 겪은 셈이다.
인도네시아의 볶음밥 ‘나씨고렝’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간 ‘종주국’ 논쟁이 불거진 음식이다. 오랫동안 종교와 음식 등을 공유하는 말레이 문화권에 속한 세 나라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화로 강제 분할됐고 각각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가 돼 서로 다른 정체성을 키웠다. 원래 하나였던 문화권이지만 강제로 분리되면서 종주국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해양 국가로서 필리핀은 중국·말레이·아랍·일본인과 활발히 교류하던 중 1565∼1898년 스페인 지배를 받고, 이후에는 미국의 식민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이주민들은 스페인의 ‘메리엔다(merienda)’라는 간식 문화와 미국의 냉동 기술을 더해 ‘몽고야’라는 빙수를 만들어 팔았다. 이것이 현지화된 것이 필리핀의 대표 디저트 ‘할루할로’다. ‘제국의 용광로’라 불리는 필리핀만의 독특한 역사가 담긴 음식의 탄생이다.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에 재직 중인 저자가 쓴 신간 ‘미식 동남아’는 독특한 재료와 향신료가 뒤섞인 만큼이나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24가지 동남아 대표 음식을 소개한다. 태국 파파야 샐러드 쏨땀, 미얀마 찻잎 샐러드 렛펫또, 인도네시아 땅콩 소스 샐러드 가도가도, 라오스 죽순 샐러드 숩 너마이,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로작, 태국 볶음면 팟타이,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커리 국수 락사, 태국 찹쌀 디저트 카오니아오 마무앙 등 다양한 요리를 통해 다채롭고 알싸한 동남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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