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5차 변론 기일에 출석해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 체포를) 지시했니, 지시 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빠진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계엄 선포 당일 국민은 심야에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공포에 떨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가 아닌가.
이날 헌재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다. 계엄 사태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여 전 사령관이 행여 자신들의 진술이 형사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선지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반면 홍 전 차장은 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에게서 “이번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헌재가 이들의 증언을 면밀히 검토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길 고대한다.
윤 대통령은 의원 등 정치인 체포 지시 의혹에 관해 완강히 부인했다. 다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가 투입된 것에 대해선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내라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엉터리 투표지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사태 이후 줄곧 대선, 총선 당시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으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윤 대통령 측은 명확한 물증을 내놓지 못한다면 탄핵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달 23일 4차 변론 당시 김 전 장관은 “국회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한 게 아니라 요원들을 빼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원’(군인)이 ‘의원’으로 잘못 전달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날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대통령이 저한테 직접 비화폰으로 전화해 ‘(국회 본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며 “(통화) 시점에 그 인원(요원)들이 본관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서로 입을 맞춰 진실을 숨기려 한다는 의구심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숨김없이 그대로 털어놓고 국민에게 사죄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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