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커뮤니티 “수업 듣고 싶다” 댓글
“이 바닥 얼마나 좁은지 알지” 협박 쪽지
폐쇄적인 의대 구조 탓 ‘눈치보기’ 일쑤
전국 39개 의대 휴학률 94.7%에 달해
일부大, 조직적 신입생 휴학 종용 시도
당국, 학칙 엄격 적용 밝혀 유급 우려
복귀해도 24·25학번 7500명 동시 수업
교수 채용 등 나섰지만 교육 부실화 우려
일각 “수업은 해야” 투쟁방식 변경 의견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알지? 너 같은 XX들 끝까지 추적해서 가만 안 둔다. 두고 봐라.”
올해 비수도권의 한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A씨는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욕설이 담긴 협박성 쪽지를 받았다. 의대 25학번들의 휴학 의사를 묻는 글에 “25학번인데 수업 듣고 싶다”는 댓글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을 휴학 중인 의대생이라 밝힌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A씨에게 “선배들이 힘들게 싸우는데 건방지다”며 “수업에 들어가는 순간 네 이름이 의대생 커뮤니티에 퍼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협박성 쪽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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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A씨는 “온라인 댓글 보고도 이러는데 실제 수업에 나가면 더 큰 비난을 받을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며 “빨리 대학 생활을 하고 싶고, 졸업도 늦추기 싫은데 무작정 휴학하라는 분위기라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등에 반발하며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2월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외치며 강의실을 떠난 의대생들은 2025학년도 대입 절차가 마무리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미복귀 의대생에 대해 유급·제적을 예고했으나 복귀 움직임은 미미하다. 오히려 25학번까지도 휴학에 동참시키려는 시도가 포착되는 등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갑작스러운 증원으로 의대 교육 부실화 문제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수업 거부가 장기화하면 피해는 의대생들이 떠안게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1년째 돌아오지 않는 의대생들
18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의대 학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9일 기준 전국 39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 제외) 재적생 1만9373명 중 휴학생은 94.7%(1만8343명)에 달했다. 의대생 대부분이 수업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뒤늦게 휴학 승인을 허용하면서 ‘2025학년도 1학기 복귀’를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수업 거부 기조는 여전하다. 의대 3년 차 이상인 ‘본과’는 통상 1∼2월 개강하지만, 올해에도 의대 40곳 중 32곳이 개강을 3월로 연기했다. 복귀 의사를 밝힌 학생이 적어서다.
의대생의 집단행동이 큰 이탈 없이 이어지는 것은 의대 구조가 폐쇄적인 영향도 크다. 의대는 조별과제가 많고, 의사 국가고시 등에 참고할 수 있는 ‘족보’도 학번 차원에서 관리되는 등 학교에 다닐 때는 물론 졸업 후에도 선배·동기의 영향력이 크다.
이런 분위기는 25학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의대 합격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25학번이 수업을 들으면 지금까지의 투쟁이 물거품이 된다”, “24학번도 1학년 수업을 못 들었는데 25학번이 선배를 제치고 수업을 듣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등 25학번도 휴학에 동참해야 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많은 25학번이 입학 전부터 휴학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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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전 수업 거부를 결심한 것은 24학번도 마찬가지인데, 25학번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이들은 의대 증원 정책의 수혜자이기도 해서다. 비수도권 의대에 합격한 B씨는 “25학번이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적인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선 조직적인 휴학 종용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는 ‘의대생 보호·신고 센터’를 통해 수업 복귀 방해 사례 등을 제보받고 있는데, 최근 신입생에게 휴학계를 내도록 설득하는 시도 등이 포착됐다.
의대 25학번 C씨는 “수업을 듣고 싶지만 결정권이 나한테 없다고 느낀다. 학과 지침이 나오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의대생 피해 장기화 우려
교육부와 대학은 올해에는 의대생들이 ‘학칙에 따라’ 꼭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업 거부가 2년째로 접어들면 향후 수업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의대는 1학년 휴학을 금지하고 있고, 2학년 이상도 2개 학기 초과 휴학을 금지하는 곳이 많다. 교육부는 지난해 각종 특례를 만들어 유급·제적을 막아줬지만, 올해엔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대학들도 더 이상의 휴학 승인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의대생들이 투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의대생 학부모는 “전공의는 의사 면허증이라도 있지만, 학생들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일단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속이 탄다”며 “의대생만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의대 23학번인 D씨는 “지난해 수업을 듣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론 25학번 증원을 막지 못해 계속 이런 식으로 가야 하나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올해 의대생이 복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4학번 3000명과 25학번 4500명은 동시에 한 학년으로 묶여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의대들은 교수를 추가 채용하고 실습동을 마련하는 등 대책을 짜는 중이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를 점검하고 충북대·원광대·울산대에 ‘불인증 유예’ 판정을 내렸다. 이들은 1년 안에 미흡 사항을 보완하지 않으면 내년 신입생 모집이 중단될 수도 있다.
교육부는 예과(1·2학년) 단계는 대부분 교양수업인 만큼 이들이 본과에 올라가기 전까지 각 대학의 수업 대책을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의대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수업 거부가 길어지면 의대생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만큼 이제는 강의실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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