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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그래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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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21 00:02:59 수정 : 2025-02-21 00: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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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세탁 일감을 얻어서 집으로 가고 있다. 판화의 간략한 묘사이지만 힘겹고 고단한 삶이 절절히 배어 나온다. 여인의 기울어진 어깨로 삶의 무거움을 암시했고, 바삐 서둘러 가고 있는 모습은 치마의 펄럭임으로 나타냈다. 얼굴 윤곽을 거칠게 축약해서 나타낸 탓인지 더욱 지쳐 보이고, 아이를 재촉하며 내딛는 발걸음도 힘겹게 느껴진다. 오노레 도미에가 세탁부를 통해서 인생살이의 험난함을 나타낸 그림이다. 산업혁명 후에 도시 서민들이 겪은 고단한 삶을 주제로 삼은 사실주의 양식이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은 사람들이 겪는 생활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증기기관차, 가스등, 사진기 등이 발명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물품들 덕택에 사람들은 생활의 편안함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열기가 퍼져 나가면서 문제점도 나타났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열악한 노동 조건이라든지 빈부 격차와 갈등 같은 사회 문제였다. 사실주의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이런 사회적 문제점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오노레 도미에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가는 세탁부’ 판화 연작(1860)

도미에는 묘사 방식에서보다 현실을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풍자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파리의 여러 주간지에 풍자화를 기고하며 지냈는데,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의 이름이 화가로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주로 도시 서민들의 삶에 관해서 관심을 보였고, 인물의 동작이나 성격의 한 측면을 강조해서 인간들이 보이는 사회적인 성격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서처럼 형태를 생략하고 변형시키기도 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풍자화를 그리면서 터득한 방법이었다. 판화를 통해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게 해서 예술 감상의 민주화도 이루려 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이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떠올려 본다. 화면 위쪽 맑고 파란 하늘에는 희망의 메시지를, 지친 어머니 앞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에겐 미래라는 의미를 덧붙이고 싶다. 힘들고 고달픈 시간이 지나면 희망찬 미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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