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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중도·보수”라는 발언을 두고 정체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유튜브 방송에서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보수,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을 보수가 아닌 극우로 몰고, 민주당이 보수 지지층의 공간을 차지하려는 대선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최근 자신의 실용주의적 행보를 ‘우클릭’이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간 보인 이 대표의 갈지자 행보를 보면 진정성을 믿기 힘들다.
이 대표의 행보에서는 조기 대선을 의식해 30%대 박스권 지지율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도·보수층을 공략해 외연을 넓히려는 것이다. 그러나 당 대표라고 해서 당내 공론화 과정도 없이 독단적으로 정강과 정책을 뒤집는 듯한 발언은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재벌·검찰 개혁과 보편적 복지확대 등을 앞세워 진보 정치의 ‘맏형’을 자임해온 정당의 대표가 할 말은 아니다. 선거에서 ‘진보’를 앞세우더니 느닷없이 ‘중도·보수’라는 건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민주당=이재명당’이라는 일극 체제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비판이 쏟아진다. “정체성은 단순한 선언으로 바뀔 수 없다”(김부겸 전 국무총리) “파란색 옷을 입고 빨간색 가치를 이야기한다”(민주당 이인영 의원) “보수 베끼기는 영혼 없는 C급 짝퉁”(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명(친이재명)계가 1997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전 ‘중도우파 정당’ 발언을 거론하며 엄호에 나섰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DJ와 민주당은 진보의 정체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치지도자의 말은 무거워야 한다. 이 대표는 ‘먹사니즘’을 넘어 ‘잘사니즘’을 외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진보 정책이든 보수 정책이든 총동원하자고 했다.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선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친기업’과 ‘성장’을 강조했지만 말뿐이었다.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 예외’는 군불만 때더니, 느닷없이 민생회복지원금을 재추진하자고 한다. 다분히 중산층의 표를 의식한 상속세 완화를 외치면서 기업 경영 승계를 가로막는 최고세율 인하는 쏙 뺐다. 이 대표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체성부터 확립하고 반시장·반기업 행보부터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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