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흙의 작가 이능호 박성욱 2인전 ‘굽 과 합’

입력 : 2025-02-23 05:57:15 수정 : 2025-02-23 05:57:13

인쇄 메일 url 공유 - +

상서로운 기운이 응집된 최소의 덩어리 ‘집’
조선 분청사기를 현대 관점으로 해석한 ‘편’
흙을 다루는 이능호 박성욱 2인전 ‘굽 과 합’

신독(愼獨). 삼갈 신, 홀로 독.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대학’과 ‘중용’에 실려 있는 말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조심한다는 뜻으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 완성을 위해 수양하는 방법이다.

 

이능호·박성욱 2인전 ‘굽 과 합’ 전시전경. 수애뇨339 제공

‘집’의 작가 이능호와 ‘편(片)의 작가 박성욱의 작품 앞에 서면 유독 ‘신독’이 떠오른다. 

 

둥글게 움츠린 검은 쇳덩이로 보이는 이능호의 ‘집’은 전통 옹기 제작 기법인 타렴질로 흙가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두들겨 빚은 작품이다. 씨앗 또는 알의 형상으로, 위가 막히고 속이 텅 비어 있는데, 이는 앞으로 커져 나갈 생명의 기운을 품었다는 은유다. 

 

이능호 작품 1.

첫 선을 보인 신작 ‘집 - 그 이후’는 씨앗이 발아하거나 알이 깨지면서 새 생명체로 움트는 단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덩어리와 투각의 형태를 동시에 담고 있다. 집을 떠난 흔적인 셈이다. 심장에서 혈관이 뻗어나가는 모습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 날아오르며 벽에 걸린 투각으로 변신한다. 생명이,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집’의 개념을 역동적으로 확장해 나가며 그 여정을 시각적으로 기록한다.

 

이능호 작품 2.

달마 같은 모습의 그의 작품들은 햇살 좋은 창가에 놓여있든 눈내린 정원에 나가 있든, 하늘을 보든 땅을 응시하든 저마다 우주를 한가득 품고 있다. 관람객들은 어느새 검은 작품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도자의 작은 조각, 박성욱의 ‘편(片)’은 조각마다 다 다르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채집한 흙을 반죽하고 도판을 만들어 작은 조각으로 자른 뒤, 조각들을 화장토로 분장한 다음 장작가마로 오랜 시간 소성하는, 몹시 정성스런 작업 과정을 거친 결과물들이다.   

 

박성욱은 자유분방한 멋의 대명사 조선 분청사기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 낸다. 화장토 농담의 변화, 장작불이 지나간 불의 자리를 머금고 자기만의 빛을 간직한 수천 개의 작은 흙조각들은 작가의 섬세한 손을 통해 ‘합’을 이루며 수려한 작품으로 거듭난다. 

 

박성욱 작품 1

작가의 편 작업은 수천 개의 편들을 모자이크처럼 반복적으로 촘촘히 나열하는 방식으로 완성되는데, 마지막 편이 끼워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풍경은 도예가 회화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각기 다른 편들이 합을 이룬 완성작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다른 인생을 사는 동안 깍이고 빚어지고 구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합을 이루고 세상을 만들어 간다. 작은 조각들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듯, 사람들도 합을 통해 근사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  

 

박성욱 작품 2

흙을 다루는 작가 이능호와 박성욱의 2인전이 3월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수애뇨339에서 ‘굽 과 합’이라는 문패를 달고 관객을 맞는다. 한국 고유의 미학인 굽과 합의 관점에서 작품을 주시한다. 전시장 내외부를 아우르며 도예가 그리는 독특한 회화적 풍경을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두 작가의  주요 연작 사이사이에 포진한 그들의 생활 도예작들은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그릇의 밑바닥에 붙은 나지막한 받침인 ‘굽’은 본디 다른 존재를 받쳐주거나 돋보이도록 만들어졌다. 편과 같은 다른 존재와 ‘합’쳐져야 그 가치를 발한다. 여기서 출발한 2인전 ‘굽 과 합’은 사람도 서로 의지하며 ‘합’을 맞춰 살아야만 살만한 세상이 펼쳐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홍화연 '깜찍한 손하트'
  • 홍화연 '깜찍한 손하트'
  • 김민주 '신비한 매력'
  • 진기주 '해맑은 미소'
  • 노정의 '시크한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