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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아들은 어떻게 ‘와인계 스티브 잡스’가 됐나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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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23 06:20:35 수정 : 2025-02-23 09: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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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스 원’ 만든 명장 폴 홉스 인터뷰/전세계 와이너리 8개 세운 ‘마이다스 손’/“좋은 와인 양조는 땅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폴 홉스. 최현태 기자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운영하는 유명 와인전문매체 와인 애드보케이트(Wine Advocate) ‘올해의 와인 인물’ 두차례 선정. 파커 점수 100점 만점 수상 10여차례. ‘오퍼스 원(Opus One)’ 양조팀 초대 와인메이커. 전 세계 와이너리 8개 설립. 이런 화려한 경력덕분에 2013년 포브스 매거진은 그를 “와인계의 스티브 잡스”라고 엄치를 치켜세웁니다. 40년동안 전통을 깨고 새로운 길을 제시한 혁신, 떼루아를 고스란히 담는 빼어난 장인의 양조 솜씨로 장인의 반열에 오른 폴 홉스(Paul Hobbs). 미국 가난한 농부의 11남매 자녀로 자란 그는 어떻게 전문가들의 극찬이 쏟아지는 세계최고의 와인메이커가 됐을까요. 한국을 찾은 홉스를 따라 떼루아에 귀 기울여 그 이야기를 한 잔의 와인에 고스란히 담는 오묘한 와인 양조의 세계를 따라갑니다.

토양을 살피는 폴 홉스. 인스타그램

◆가족 농장 그리고 떼루아

 

홉스는 뛰어난 포도밭을 찾아내는 동물적인 감각을 지녀 파커가 “마치 최고의 트러플을 찾는 사냥개와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랍니다. 그는 이런 타고난 와인 DNA를 바탕으로 최고 와인메이커의 반열에 오른 뒤 미국 캘리포니아에 폴 홉스 와이너리(Paul Hobbs Winery), 크로스반(Crossbarn), 홉스(HOBBS)를 설립합습니다. 또 뉴욕 핑거 레이크스에 힐릭 & 홉(Hillick & Hobbs), 아르헨티나에 비냐 코보스(Viña Cobos), 프랑스 카오르에 크로커스(Crocus), 아르메니아에 야쿠비안홉스(Yacoubian Hobbs), 스페인 갈라시아에 알바레도스 홉스(Alvaredos Hobbs)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폴 홉스 어린시절 가족 농장.  홈페이지
폴 홉스 부모와 남매. 홈페이지

홉스는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지는 포도밭을 선별하는 훈련을 어린 시절 11남매와 살던 뉴욕 북부의 작은 과수원에서 시작했다고 돌아봅니다. “농사일은 어릴 때부터 뼛속 깊이 새겨져 있어요. 11남매 중 하나로 뉴욕 북부의 가족이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자랐거든요.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에 수확한 과일을 직거래 장터에서 팔았죠. 그러다 같은 품종의 사과를 다른 과수원에서 재배했을 때 맛과 질감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줬어요. 그때 이미 포도밭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리는 와인메이킹 DNA가 몸속에 심어진 것 같아요.”

대학 시절의 폴 홉스. 홈페이지

홉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1978년 캘리포니아 UC 데이비스에서 포도 재배 및 양조학 석사 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와인의 길로 나섭니다. 그의 첫 작품이 바로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가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 샤토 무통 로칠드 오너이던 바론 필립 드 로칠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 남작과 손잡고 탄생시킨 오퍼스 원입니다. 홉스는 1978년 오퍼스 원 양조팀 창립멤버로 스카우트돼 오퍼스 원을 세상에 선보이는 위대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미국 명품 와인 오퍼스 원을 탄생시킨 바론 필립 드 로칠드(오른쪽)와 로버트 몬다비.

“26살 때였죠. 오퍼스 원이 만들어지기 1년전인 1978년 몬다비에게서 직접 연락이 왔어요. 영광스런 기회였고 상당히 운이 좋았죠. 1978~1984년 6년동안 오퍼스 원의 와인메이커로 일했답니다. 양조학을 공부할 때 프렌치 오크와 미국 오크를 비교하는 연구 논문을 썼는데 몬다비가 큰 관심을 가진 것 같아요. 미국 오크는 훨씬 더 입자가 무겁고 바닐라 캐릭터 더 강하며 탄닌도 더 많아요. 바닐라가 많아서 와인은 더 부드럽게 느껴지죠. 오크향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가고 딜 같은 향신료도 강해요. 딜향이 강하게 느껴지면 미국 오크를 강하게 쓴 겁니다. 반면 프렌치 오크는 오크향이 포도즙과 훨씬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융화되고 복합미도 더 뛰어납니다. 오크는 나무 수령이 오래되고 건조한 기간이 오래될수록 입자가 촘촘해 미세한 산소가 들락거리며 에이징될때 자연스럽게 오크향이 더해집니다. 그래서 120년 수령의 오크를 밖에서 3년 정도 건조한 오크를 씁니다.”

포도를 살피는 폴 홉스. 인스타그램
한국을 찾은 폴 홉스. 최현태 기자

◆헛간의 추억, 크로스반 탄생

 

오퍼스 원에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딘 홉스는 시미 와이너리(Simi Winery), 나파밸리 컬트와인 피터 마이클(Peter Michael), 루이스 셀러(Lewis Cellars), 아르헨티나의 보데가 카테나(Bodegas Catena) 등 유명한 와이너리의 컨설턴트를 거칩니다. 이때 포도밭을 섬세하게 관리하면 가장 매력적인 와인이 탄생한다는 강한 믿음을 축적하게 됩니다.

폴 홉스 와이너리 전경. 홈페이지
폴 홉스 포도밭. 홈페이지

이에 1991년 자신의 이름을 건 폴 홉스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그는 나파밸리 포도재배의 거장으로 불리던 래리 하이드(Larry Hyde)와 소노마의 리처드 디너(Richard Dinner)에게서 샤르도네, 피노누아, 카베르네 소비뇽을 5t씩 구매해 자신만의 와인을 빚기 시작합니다. 또 1998년 캘리포니아 세바스토폴의 포도밭을 매입해 증조할머니의 이름을 딴 캐서린 린지 에스테이트(Katherine Lindsay Estate)로 이름 짓고 카베르네 소비뇽에서 시작해 샤르도네, 피노누아로 늘려갑니다. 현재 그의 포도밭은 8개 지역으로 확산됐습니다.

 

폴 홉스는 이어 2000년 가족의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를 담아 크로스반(Crossbarn)을 설립합니다. ‘십자가헛간’이란 뜻은 크로스반은 어린 시절 뉴욕 주 나이아가라 카운티에 있는 150년이 넘은 가족의 과수원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홉스는 어린시절 닭, 말, 소가 자라던 마굿간에 딸린 1층과 2층 방에서 형제들과 자랐는데 그 때의 추억도 와이너리 이름에 담았습니다.

한국을 찾은 폴 홉스. 최현태 기자

◆포도밭 캐릭터를 명확하게 담다

 

홉스는 떼루아를 아주 명확하게 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와인 양조는 땅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늘 떼루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모든 포도나무는 저마다 다른 미세 기후에서 자라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와 독특한 특성을 지닙니다. 매 빈티지마다 포도밭의 뚜렷한 특징을 균형 잡히고 우아한 와인으로 옮겨내고자 노력한답니다. 포도밭의 에너지 즉, 서늘함이나 따뜻함, 안개나 햇빛, 화산 토양이나 충적 토양 등을 잔에 담아 전달하는 것이 와인 양조에서 아주 중요해요. 이를 위해 포도송이 줄기를 제거하지 않는 전체 송이 압착방식을 적절히 사용합니다. 줄기를 사용하면 와인의 복합미와 탄닌을 더 끌어 낼 수 있습니다. 또 떼루아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토착 자연효모만 사용해 발효합니다. 여기에 볼륨감과 복합미를 높이기 위해 효모앙금과 숙성하는 쉬르리(Surlees) 숙성을 더합니다. 특히 떼루아 캐릭터를 명확하게 담기위해 정제나 여과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병입합니다.”

소노마 코스트 풍경. 인스타그램
크로스반 바이 폴 홉스 샤르도네 소노마 코스트. 최현태 기자

크로스반(CrosBarn) 바이 폴 홉스 샤르도네 소노마 코스트는 이런 홉스의 양조 철학이 잘 드러난 와인입니다. 바다와 가까워 서늘한 기후를 지닌 소노마코스트의 섬세함을 잘 담았습니다. 갓 딴 청사과, 라임, 배의 싱그러운 과일향으로 시작해 흰꽃향이 더해지고 레몬 제스트, 허니서클, 오렌지 블라썸 향이 풍부하게 퍼집니다. 입에서는 신맛과 단맛을 모두 지닌 허니크리스프 사과 풍미와 신선한 구아바가 어우러집니다. 으깬 돌 같은 테루아 특유의 솔티한 미네랄이 풍성하게 느껴지고 생기발랄한 산도와 크리미한 질감의 밸런스가 뛰어납니다. 게살 볶음밥, 버섯과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프리타타, 치킨 파이야르와 잘 어울립니다.

크로스반 바이 폴 홉스 소노마코스트 피노누아. 최현태 기자
크로스반 바이 폴 홉스 소노마코스트 피노누아. 인스타그램

크로스반 바이 폴 홉스 소노마코스트 피노누아는 러시안리버밸리와 웨스트소노마코스트 피노누아를 절반 가량 섞어서 만듭니다. 석류, 자두, 크랜베리, 체리, 싱싱한 붉은 사과 껍질 향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서 섬세한 꽃 향과 숲속 바닥 향, 말린 딸기향, 달콤한 베이킹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입에서는 자두, 라즈베리, 모렐로 체리가 미각을 자극하고 온도가 오르면서 나무껍질 향이 더해집니다. 해초류의 미네랄, 생기발랄한 산도, 섬세한 탄닌도 우아하게 어우러집니다. 소시지와 버섯을 곁들인 구운 피자, 부카티니 알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 등과 궁합이 좋습니다. 8% 전체 송이 압착, 9개월 효모앙금 숙성을 거쳐 7%만 새오크배럴에서 숙성해 오크향을 최대한 절제합니다.

크로스반 바이 폴 홉스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최현태 기자

크로스반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칼리스토가, 쿰스빌 등 나파밸리의 엄선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듭니다.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조금씩 섞는데 비율은 매년 달라집니다. 붉은 건포도, 잘 익은 허클베리, 즙이 풍부한 야생 블랙베리, 자두로 시작해 달콤한 바이올렛향, 향긋한 말린 허브 향이 은은하게 깔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포도, 민트, 담뱃잎, 베이킹향이 어우러집니다. 복합미와 풍부한 질감, 실크처럼 부드러운 탄닌이 돋보입니다. 치마살 스테이크와 잘 어울립니다. 18개월 배럴 숙성(새오크 15%) 합니다.

폴 홉스 러시안리버밸리 샤르도네. 최현태 기자

◆화산토 먹고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

 

크로스반 시리즈 와인들이 과일향에 중점을 둔 순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라면 폴 홉스 시리즈 와인은 이 보다 볼륨감이 있고 크리미한 스타일입니다. 폴 홉스 러시안리버밸리 샤르도네는 신선한 감귤, 잘 익은 빨간 사과 껍질, 아삭한 아시아 배, 살구, 천도복숭아로 시작해 잔을 흔들면 레몬 제스트, 즙이 많은 사과, 열대 과일향이 더해지고 은은한 치자나무 향도 깔립니다. 온도가 오르면서 브리오슈, 크림, 베이킹 향신료가 더해집니다.

폴 홉스 쿰스빌 카베르네 소비뇽.  최현태 기자

폴 홉스 쿰스빌 카베르네 소비뇽은 화산토에서 자란 포도로 만듭니다. 잘 익은 블랙베리와 블랙 커런트로 시작해 다크 초콜릿, 가죽, 달콤한 담배향이 더해집니다. 특히 쿰스빌 포도밭의 시그니처인 흑연과 아니스 향신료가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볼륨감이 크고 구조감이 뛰어나며 층층이 쌓은 복합미가 매력적입니다. 특히 서늘한 남부 나파밸리 포도밭의 신선함과 활력을 잘 표현해 밸런스가 뛰어납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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