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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한옥, 건축가 없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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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24 23:28:43 수정 : 2025-02-24 23: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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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설계·시공 함께 맡았던 목수
집에 대한 이해 몸소 체득했기에
천년 이상 전통가옥 맥 이어온 것
설계과정 참여 제도적 마련 필요

입춘이 지난 지도 한참이 되었으니, 겨울이 막바지에 달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추위가 물러나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봄이 오리라. 추운 겨울에도 우리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보금자리, 집이 있기 때문이다. 바깥 날씨가 혹독할수록 새삼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요즘 집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경제적인 면은 그만두더라도 집 짓는 과정은 복잡하기만 해 왠지 소외당하는 느낌이 든다. 설계와 시공, 여기에 감리까지 전문가가 아니면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다. 게다가 건축 재료는 왜 그렇게 다양하고 거기에 따른 공법은 왜 그리 복잡한지 건축에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처음 듣고 보는 것이 부지기수다. 내가 살 집을 내 손으로 지어봤으면 하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 직한 평범한 꿈이다. 하지만, 집 짓기는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일이라 웬만한 사람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왜 그런 골치 아픈 고생을 해, 잘 지어 놓은 아파트가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 관리는 얼마나 편한데, 관리비만 내면 만사형통이고 집주인은 거저 자기 집 현관문 비밀번호만 챙기면 되는데,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욱 집 짓는 일을 꺼리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집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애당초에는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집이 요즘처럼 함부로 짓고 가질 수 없는 것이래서야 우리의 삶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치 음식을 먹고 옷을 입는 것처럼 집이 우리의 물질적 삶의 ‘필요조건’임을 깨달으면 작금의 사정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미국의 건축가이자 작가, 그리고 교육자였던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1964년 출판된 그의 저서 ‘건축가 없는 건축’에서 세계 각지의 토속 건축을 조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토속 건축은 아름다움이나 상징성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의 기후와 문화 그리고 재료를 반영하고 있으며,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전해지고 다듬어졌다. 또한, 친환경적이고 값싼 재료를 사용하며 개인보다는 한 사회 집단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사례로는 몽골과 시베리아 유목민의 전통 텐트인 유르트, 북미 대륙 북쪽 민족인 이누이트족(族)이 눈덩이나 얼음덩이로 지은 돔 모양의 이글루, 아프리카인들이 나뭇잎이나 풀로 지붕을 인 오두막, 남이탈리아 지방의 원추형 지붕을 가진 석회암 건물 트롤리 등 세계 각지의 토속 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와집과 초가집, 너와집 등 우리가 발전시킨 여러 형식의 한옥도 이 범주에 속한다.

시대가 변해, 이제 우리 머릿속에 남이 있는 한옥은 기와집뿐이다. 초가집과 너와집은 더 이상 짓지 않으니, 문화유산으로만 남아 있다. 짚이나 갈대 등으로 지붕을 이는 초가집이나 얇은 돌이나 나뭇조각으로 지붕을 이는 너와집은 예전에는 값싸고 흔한 재료였지만 지금은 도리어 귀한 재료일 뿐 아니라 내구성이 약하고 품이 많이 들어 관리하기 힘들어 오히려 비싼 집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한옥은 토속 건축이 다 그렇듯이 시공자가 동시에 설계자였다. 요즘처럼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설계와 시공이 통합되어 있었으니, 설계와 시공이 어긋날 일이 없어 더 완벽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목수의 우두머리인 도목수의 머릿속에는 선대 목수가 전수한 집에 관한 ‘빅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그때그때의 사정에 맞게 집을 배치하고 규모와 모양을 정했다. 도목수는 공사 중 예기치 못한 사정이 생기면 예하 목수들과 여러 분야 장인과 함께 적절한 대응책을 개발함으로써 자신이 물려받은 ‘빅데이터’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 이를 더욱 고도화했고 이를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 이는 마치 작곡자이자 연주자였던 옛 음악가들이 무대의 성격과 청중의 분위기에 맞추어 적절히 즉흥 연주를 곡의 중간에 삽입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아마도 건축도 음악처럼 설계자이자 시공자였던 실력 있는 도목수도 이런 경지에 있었던 듯하다. 도면으로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와는 달리 목수는 머리로 집을 구상하고 몸으로 나무를 골라 집을 짓기 때문에, 집에 대한 이해가 체득되어 있었다.

요즘은 한옥의 설계도 일반 건축과 다르지 않다. 건축사 면허를 가진 건축가가 한옥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목수가 집을 짓는다. 법적으로 목수는 한옥 설계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한옥이 아닌 일반 건축물은 건축가의 창의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한옥은 건축가의 창의성보다 한옥에 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집을 보고 한옥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천 년 이상 내려온 한옥의 전통 위에 그 집을 올려놓을 수 있을 때이다. 한옥은 그동안 쌓아온 일정한 형식이 있고 오랜 경험을 가진 목수가 체득한 적합한 구법과 비례가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한옥의 설계 과정에 실력 있는 목수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원래 목수는 설계자이자 시공자였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나라가 서양의 면허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목수가 가졌던 설계자의 위치를 박탈하고 시공자로 그 위치를 한정하고 격하시켰다. 현대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섭’의 시대다. 하물며, 원래의 것대로 회복하고 일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데에야 ‘통섭’이란 거창한 용어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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